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DOBOM Dec 12. 2023

Purple night


직장은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고, 정년은 점차 짧아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런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로 수익을 내어 조직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차이가 있을 뿐,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부동산, 스마트 스토어, 주식, SNS채널 키우기, 전자책 등등 출퇴근의 족쇄를 끊어주고 인생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다는 광고와 채널이 넘쳐난다. 


혹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뒤엉킨 불안과 희망이 밤이면 잠자리에서 속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차가웠다. 할 것이 넘쳐났고, 냉정하고, 쫓겼다. 남의 기준에 맞춰주느라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흘려보냈다. 글을 쓰고 싶었고, 이 생각은 더 묵힐 수 없을 만큼 오래됐지만 열망과는 반대로 짧은 글조차 쓰지 못했다. 


하루가 끝나고 나면 탈수기에 돌린 수영복이 따로 없었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작품을 면밀하게 봐야 했던 사람으로서 글로 생계를 이끈다는 게 까다로운 단계를 거치고도 쉽지 않다는 걸 피부로 느꼈기에 섣부르게 시작했다가 시간만 쓰고 결과가 나지 않을까 무서웠다.  ‘나도 누군가 내 글을 재밌게 읽어줬음 좋겠다…’는 바람 같은 걸 일기장에 끄적일 때조차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 첫 술마저도 밥 숟가락이 아니고 귀이개 수준이라 한 세월이 걸리고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무언가를 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별별 생각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러다 보면 흐려질 것 같았다. 그러나 방치할수록 미련만 커져갔고, 이윽고 걱정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미련을 없애려 뭐라도 쓰게 됐다. 쓰면서도 기대만큼 잘 나오지 않아 공개하는 게 부끄럽긴 하다. 그래도 미련에 깔려 후회하지 않으려면 용기라는 창문을 열고 미련을 내보내려 애쓴다. 이번엔 단기간에 어떻게 되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않는 양심도 같이 챙기면서.


현실에서 잠깐 비껴나와 있는 지금 최대한 미뤄왔던 것들을 채워 넣는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 ‘보고 싶어요’ 체크하고 보지 않았던 영화나 드라마, 배우고 싶었던 글과 그림을 배우러 다닌다. 재도전 끝에 브런치에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신청했던 글쓰기 클래스의 과제로 제출한 글은 반응이 좋았다.


새파랗게 굳어있던 현실에 오래전부터 품었던 작고 빨간 열기를 풀어낸다. 녹아내린 마음 끝에 보랏빛이 피어오른다. 조금씩 내다 버리고 있는 미련 사이로 햇볕이 든다. 새파랗게 질려있던 현실이 작은 열망에 녹아 보랏빛 희망으로 넘실거린다. 신이 난다. 진작 할걸. 그러니 다시 현실로 돌아간대도 열기는 계속 풀어낼 것이다. 파랑에서 보라를 지나 빨강으로 일상을 가득 채울 수 있을 때까지.


작가의 이전글 01. 어디서 웹툰 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