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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Nov 02. 2023

변화는 곁눈질이 아닌 다르게 바라볼 때 시작된다.

꼼꼼하지 않았다. 꼭 마무리 단계에서 마음이 급해졌다. 단순 반복되는 업무일수록 더했다. 빨리 끝내놓아야 다른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단 생각에 강박적으로 쳐내려고 했고, 그러다 결국 구멍이 났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초가을 무렵, 구멍을 제대로 내버렸고, 상사에게 지적받았다. 지진이 나서 쪼개지는 멘탈 틈으로 비난이 소리쳤다.

‘왜 꼭 마지막에 가서 그런 실수를 하는 거야. 조금 천천히 하고, 다시 한 번 더 보면 되잖아!’

그러자 신경질이 화를 내며,

‘확인했어! 그런데도 못 발견한 걸 어떻게 해! 그리고 다른 일은 안 하고 그거만 붙잡고 있을 거야?’

하고 맞받아쳤다. 내 마음 안에서 둘은 멱살을 잡고 뒹굴었다. 그렇게 머리도 일도 쥐어뜯고 있었는데, 카톡 메시지가 모니터 아래쪽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한껏 구겨진 미간이 확 펴지고 반가움에 눈이 커졌다. 

1년도 더 넘게 안부만 겨우 주고 받던 친구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메시지를 열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나는 몇 번이고 천천히, 반가울 줄 알았던 메시지를 읽고, 또 읽으며 끝도 없이 무너져내려버렸다.


비보였다. 친구의 언니가, 친구 연락처로 전해 온 부고였다. 손가락 끝부터 피가 식어갔지만, 반대로 마음은 눈물 수도꼭지를 돌아가지도 못하게 잡고 있었다. 장례식에서 단정하게 웃고 있는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으로 걸려있는 걸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떤 슬픔조차 일렁이지 않았다. 이상하기만 하던 그날 저녁, 지하철로 1시간 30분이 넘게 달려와 자정 무렵에 다시 노트북을 켰다.


우여곡절 끝에 일은 마무리가 되었고, 이틀 정도 지나 여느 때처럼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잠을 청했을다. 순식간에 긴장이 풀리더니 방류되는 댐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번 터진 슬픔은 두꺼운 겨울 이불 아래에서 걷잡일 수 없이 흘렀다. 친구가 영영 소식조차 닿지 않는 곳에 갔는데 덤벙거리는 습관 때문에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었다니, 내가 한심하고 친구에게 미안해서 꺽꺽 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나의 덤벙거림이 저주 같았다.


몇 개월 만에 A가 연락이 왔다.

“같이 저녁 먹을래?”

며칠 뒤, 따끈따끈한 순살 치킨과 맥주를 앞에 두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A가 말했다.

“그거는 생각을 똑같은 방향으로 해서 그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똑같이 틀리게 돼. 아예 접근 방법을 다르게 해봐.”

“오, 알겠어. 메모, 메모.”

처음 듣는 얘긴 아니었지만, 이 고민에 적용해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 감탄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기’라고 메모장에 얼른 적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주차할 일이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차가 테두리 안에 들어갔고 옆 차와 주차 간격이 완전히 중앙이 아니더라도 공간이 넉넉하다 싶으면 내려서 차를 잠갔는데, 그때,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똑같이 틀리게 돼.’

친구의 목소리가 불현듯 떠올랐다. 발걸음을 멈추고 차를 다시 돌아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번엔 주차를 한번 예쁘게 해보자.’


다시 차에 올라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고, 차 문도 살짝 열어 바퀴와 테두리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해봤다. 그렇게 운전을 시작하고 거의 처음으로, 정중앙에 주차하는 데 성공했다. 돌아서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5분 남짓한 시간이 흘러있었다. 결과에 비해서 과정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뭐 없네?' 

어딘가 우쭐해진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자책하지도, 채근하지도 않고 바꿔내다니 신기했다. 아니, 자책하지 않고, 채근하지 않았기에 달라졌던 거였다. 일이 터지고 나서 ‘ 왜 그럴까, 바보 같아.’ 하면서 자책하거나 ‘어이구, 또야?’ 같은 비난하는 게 아니라 일이 터지기 전에 ‘그래, 뭐, 한 번 평소랑은 다르게 해볼까?’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다르게 해봤기 때문이었다. 마찰이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고 나니, ‘해낸다`란 말을 할 만큼도 안 되게 대수롭지 않게 일이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절대 풀 수 없을 것 같던 한 번 더 달린 족쇄가 물에 녹는 솜사탕마냥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 


언젠가 또 반복되는 실수에 괴로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땐 실수를 싸늘하게 쏘아보기보단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단 말을 되뇌이며, ‘스읍, 저번이랑 뭔가 다르게 해볼까?’ 란 생각으로 지난번과는 다르게 문제를 바라봐줄 것이다. 그 시선 끝에는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나만 아는 작은 변화가 차곡차곡 쌓여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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