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제주.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한 아진은 어린 딸 해생과 생이별한다.
산을 오르던 중 마을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딸을 찾기 위해 다시 내려온다.
엄마는 내려오고 딸은 엄마를 찾아 산을 오른다.
영화 〈한란〉은 그렇게 엇갈리는 모녀의 생존 여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진짜로 겨누는 것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그 배경에 놓인 국가 권력의 광기다.
1. 공권력은 누구의 것인가
영화 속 토벌대는 ‘질서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을 불태우고, 양민을 고문하고, 총살한다.
박 중사는 빨갱이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을 짐승 다루듯 학대한다.
명령은 위에서 내려오고 폭력은 아래에서 실행된다.
제주 4·3 항쟁은 경찰의 발포로 시작해 남로당 무장대 진압이라는 명목 아래 수만 명의 도민이 희생된 국가 폭력이었다.
국가가 독점한 공권력은 원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 이념에 사로잡히는 순간 ‘국민’은 ‘적’으로 재분류된다.
그때 총구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한다.
2. 소수의 무장과 다수의 학살
영화는 남로당 세력을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마추어적이고 미숙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정남은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말하지만 아진에게 그 말은 공허하다.
아진에게 좋은 세상은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딸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무장대는 소수였다.
그러나 진압은 전면적이었다.
3만 명이 넘는 도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통계는 ‘토벌’이라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드러낸다.
국가는 소수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다수를 처벌했다.
그것이 국가폭력의 전형적인 구조다.
3. 여성과 아이의 몸 위에서 작동하는 권력
〈한란〉에서 가장 처절한 장면들은 전투가 아니라 민간인의 고통이다.
강간, 방화, 고문.
폭력은 가장 약한 존재에게 집중된다.
역사 기록 역시 다르지 않다.
제주도는 오랜 기간 금족령에 묶였고, 많은 여성들이 폭력을 피해 타지로 떠났다.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국가폭력은 단지 사람을 죽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공동체를 해체하고, 자신의 말투를 숨기게 했고, 가족의 죽음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4. 열린 결말, 닫히지 않은 역사
영화는 모녀의 생존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동굴 속에서 마지막 숨을 넘기려는 아진, 그를 깨우는 아이의 울음.
살아남았는지 아닌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질문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것.
국가폭력은 특정 시대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반복될 수 있는 구조다.
5. 한 편의 영화가 던지는 경고
〈한란〉은 새로운 사실을 폭로하는 영화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다.
그리고 묻는다.
공권력은 지금 누구의 손에 있는가.
그 손은 시민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권력을 향하고 있는가.
제주 4·3 항쟁의 비극은 완결된 과거가 아니다.
영화는 모녀의 생존기를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연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 보여준다.
총은 스스로 발사되지 않는다.
항상 누군가의 명령과 선택이 그 뒤에 있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대와 경찰이 국민에게 총을 겨누고 학살을 일삼았다.
〈한란〉이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다.
국가는 누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