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핀란드에 와서, 어쩌다가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나?
'나는 왜 뭐 하나 진득하게 오래 좋아하는 게 없을까?'
20대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던 고민이었다. 그리고 서른이 되기 전에는 뭐든 하나라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열심히도 기웃거렸다. 내가 뭔가 잘못하는 걸까 생각할 때, 엄마는 시크하게 말했다.
(부산 사투리)“니는 원래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 와중에 또 자기 합리화는 빨라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럼 생긴 대로 한 가지를 오래 좋아하지 않는 대신, 매 순간순간 좋아하는 것을 계속 시도해 보자고 합리화했다. 뭐가 되었든 어쨌든 꾸준히 하는 거니까. 그리고는 좋아서 시작했던 일에 바닥이 보였고, 2012년 여름 핀란드로 유학을 왔다.
그 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곳에서의 삶을 돌이켜 보니,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은 건 핀란드에 오고 나서부터 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어려서 내 취향을 잘 몰랐을 수 도 있었겠지만, 평균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성취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취향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내가 원해서 미술 입시를 했고, 내가 정한 디자인과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전공과 다른 교육 관련 진로를 택하고, 비교적 남들 눈치 안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새롭게 시도해 보는 젊은 날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결과로 빨리 증명해 보여야 하는 압박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중 졸업 후, 디자인회사가 아닌 30만 원 월급(차비)을 받으며 일했던 미술관 교육 인턴 일은 친했던 친구 녀석도 납득이 안 가는 것이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쓰러져 잘 때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낼 정도로 힘에 부치는 것이었다. 진득하게 하는 것 없이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고 허우적 대던 나는 주변인들의 눈치가 보였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물 위에 둥둥 떠서 아주 천천히 팔을 휘저어야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인데, 그때의 조급한 상황은 나를 병들게 했다.
나를 더 살필 수 있도록 눈치 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조용한 동네에 가서 내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이때 마음속에 바로 떠오른 곳이 핀란드였다. 핀란드는 내가 학부시절 제품 디자인을 공부할 때부터 눈여겨본 나라였다. 간결하고 실용적이지만, 자연스럽고 어딘가 투박한 멋이 있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의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세련되고 아주 잘 차려입은 느낌의 디자인보다 정감이 있어 보였다. 그런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들은 느긋하고 마음도 따뜻하지 않을까?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에는 당시 인구가 60만 명이 안 돼서 한적하게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서울시 강남구에만 50만이 조금 넘게 살고 있으므로 헬싱키가 얼마나 적은 사람이 사는지 가보지 않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석사 학위는 안중에 없었고, 유학을 간다는 것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는 완벽한 핑곗거리였다. 내가 지원했던 학과인 ‘응용 예술과 디자인(Applied Art & Design)’과는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방대한 두 분야의 경계에서 모든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에 서 있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고, 나의 유학 의도와 딱 맞아떨어지는 환경이었다. 게다가 학비가 무료인 것까지, 모든 조건들이 나를 핀란드에 갈 운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한국을 떠나 올 때, 엄마에게 2년만(한국의 석사 과정이 보통 2년이라, 그때는 어리석게도 2년 안에 졸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나게 놀다가 오겠노라고 단언하고 떠나온 길은 벌써 강산도 변할 만큼의 긴 세월이 흘러 지켜지지 못한 약속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이 내 주머니에 넘치지 않을 만큼 차곡차곡 모여들었다. 그것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자갈만큼이나 흔한 것들이지만, 내 눈에는 반짝여 보이는 것들이었다. 처음에 가볍게 하나씩 모을 때는 그것들이 얼마만큼 휘청거리는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해 주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는 생각지도 못한 시시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언제나 주머니에서 꺼내 볼 수 있고, 조금 무겁다 느껴지면 잠시 주머니에서 꺼내 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날 때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흔한 것들이다. 나는 그것들을 핀란드에서의 삶을 행복하다고 느끼게 만든 '핀란드산 공짜행복'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그 별것 아닌 시시한 행복을 하나씩 써 내려가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