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중순 - 10월 말; 10 시간
이 게임은 과거 텔테일 게임즈에서 워킹 데드나 울프 어몽 어스 같은 명작들을 만들었던 핵심 개발자들이 설립한 애드혹 스튜디오의 데뷔작이다. 텔테일의 폐쇄 이후 팬들이 목말라하던 그 특유의 내러티브 중심 게임 스타일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공개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2024년 더 게임 어워드에서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고 2025년 출시 이후에는 더 게임 어워드 최고의 데뷔 인디 게임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비평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브레이킹 배드의 에런 폴을 비롯해 제프리 라이트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과 크리티컬 롤의 유명 성우들이 대거 참여해 연기 퀄리티 면에서도 압도적인 위상을 보여준다.
게임의 배경은 슈퍼히어로와 빌런이 일상이 된 가상의 로스앤젤레스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로버트 로버트슨은 원래 메카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영웅이었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슈트가 파괴되면서 은퇴하게 된다. 이후 그는 전장에 직접 나가는 대신 히어로들을 현장에 배치하고 지시를 내리는 디스패처라는 직업을 갖게 되는데 이런 독특한 설정이 게임의 핵심이다. 단순히 싸우는 히어로가 아니라 영웅들의 인간적인 고민과 오피스 정치 그리고 개인적인 복수극을 내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히어로물과는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직접 플레이해보니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역시 플레이 타임이었다. 전체 분량이 10시간 내외로 짧은 편인데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담 없이 즐기기에 아주 적절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게임들이 지나치게 플레이 타임을 늘리려고 지루한 반복 요소를 넣는 경우가 많은데 디스패치는 깔끔하게 핵심 이야기만 전달하고 마무리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조작이나 난이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 점도 접근성 측면에서 훌륭했다. 복잡한 컨트롤이나 머리 아픈 퍼즐 대신 대화 선택지와 간단한 해킹 미니게임 그리고 히어로를 어디에 보낼지 결정하는 전략적인 선택이 주를 이룬다. 덕분에 게임 숙련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영화나 미드 한 시즌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작화 역시 만족스러웠다. 미국 만화 특유의 색채와 셀 셰이딩 기법이 가미된 그래픽은 마치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코믹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캐릭터들의 애니메이션도 자연스럽고 특히 표정 묘사가 섬세해서 선택지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선택지에 따른 분기별 시나리오도 생각보다 알차게 준비되어 있었다. 단순히 대사 몇 마디가 바뀌는 수준이 아니라 특정 인물과의 관계에 따라 영웅이 빌런이 되기도 하고 팀의 구성 자체가 달라지기도 하는 등 다회차 플레이를 유도하는 요소들이 잘 배치되어 있다. 특히 인비지걸이나 블론드 블레이저 같은 캐릭터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엔딩의 결이 크게 달라지는 점은 텔테일 출신 개발자들의 내공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초반부의 설정은 굉장히 신선하고 몰입감이 높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평이해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중반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갈등과 빌드업이 엔딩 부근에서 급격하게 소모되거나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마무리되다 보니 마지막에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초반의 기대치에 비하면 조금 부족했다. 조금 더 파격적이거나 깊이 있는 반전이 있었다면 훨씬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스패치는 내러티브 어드벤처 장르의 부활을 알리는 아주 준수한 작품이다. 90년대 특촬물이나 전형적인 히어로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미국 드라마 특유의 티키타카 대사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취향에 아주 잘 맞을 것이다. 비록 후반부의 힘이 빠지는 점이 옥에 티이긴 하지만 잘 짜인 애니메이션과 성우들의 열연 그리고 선택의 무게를 고민하게 만드는 구조는 이 게임을 한 번쯤 꼭 플레이해볼 가치가 있게 만든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묵직한 여운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