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올 해도 수선화가 피었어요.
아빠! 나도 내 삶을 살고 있어요.
아빠!
올 해도 수선화가 피었어요.
우리 집에 피던 그 수선화가 요양원 정원에 피었네요.
미니 수선화, 왕수선화가 아니고요.
아버지가 키우시던 그 수선화예요.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 집은 수선화 천국이었지요.
경상도 사투리로 수선화가 천지삐가리였잖아요.
따뜻한 남쪽 나라였던 부산에 살았던 덕분에 2월이면 우리 집은 수선화가 가득했잖아요.
봄이면 그 작은 정원 돌 틈 사이로 가득히 피어나던 수선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빠한테 말을 못 했어요.
이제 와서 얘기하는 건데요.
저 학교 가는 거 안 좋아했어요.
학교 가는 거 싫었어요.
그런데 현관에서 대문까지 가득한 수선화꽃 사이를 걷는 게 좋았어요. 정말 짧은 길이었지만요.
수선화 꽃이 피는 동안에는 등하교 길이 행복했어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쯤이었지요.
아빠가 정원에 가득한 수선화 알뿌리를 캐서 화분에 심으셨지요.
2층 마루에 3층 짜리 화분대를 놓고 그 화분들을 놓으셨어요.
겨울 내내 그 화분들에서 새파란 수선화 잎이 올라왔잖아요.
2월이 돼서 수선화가 피었고요.
3층짜리 화분대였지만 위칸까지 화분을 놓으셨었죠.
거의 내 키만 한 수선화로 가득한 벽이 생겼었어요.
내가 키가 좀 작죠!
내 방문 앞 벽에 붙여 놔 주셨었어요.
방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나는 수선화 천국으로 들어가는 듯 행복했어요.
아빠! 미안해요.
아빠한테 그 수선화로 가득한 벽을 선물해 주신 것이 고맙다는 말을 못 했어요.
그때 너무 행복했는데요.
우리 집 건너,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인 혜정이가 안 부러웠어요.
혜정이 데려 와서 그 수선화 벽을 자랑한 거 모르셨죠.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너무 행복해요.
아빠는 모르셨죠.
내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숨도 안 쉬어질 때..
그 가득한 수선화를 기억하며 잠시 평안할 수 있었어요.
아빠의 수선화는 나에게는 평안이고 행복이었어요.
언젠가 나도 주택에 살고 싶다는 꿈이 항상 있었어요.
정원 가득 수선화를 심으려고요.
생각만 해도 너무 멋있잖아요.
집 둘레를 따라 수선화를 심겠다고 마음먹었었어요.
수선화로 둘러싸인 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수선화예요.
그렇게 수선화를 좋아하면서 이유를 몰랐어요.
어린 시절 내 삶을 충만하게 해 주었던 꽃이었기 때문이었나 봐요.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요.
나는 아빠가 만들어준 수선화 천국의 공주였으니까요.
아빠!
난 아빠가 수선화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봄이면 집 안팎을 수선화로 싸버리셨잖아요.
아빠가 너무 좋아해서 수선화 천국을 만드는 건 줄 알았어요
아빠가 좋아하는 꽃은 장미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셨을 때요.
저는 당연히 그 집에 또 수선화가 가득할 줄 알았어요.
정원 한쪽에 수선화가 있기는 했어요.
정말 몇 포기 안 되는 수선화였어요.
한창 미니 수선화, 왕수선화가 유행하던 때였잖아요.
우리 집에 있던 수선화 알뿌리를 못 구해서 그런 줄 알고
그 뿌리를 사려고 화원을 돌아다닌 적도 있어요.
아빠는 해마다 새로운 품종의 장미를 사러 서울 나들이를 하셨어요.
시간이 지나며 아빠의 정원은 장미로 가득했어요.
온갖 품종의 장미 때문에 에버랜드 장미원 축소판이라는 별명까지 붙였었어요.
아빠는 에버랜드 장미원 축소판이라는 말을 너무 좋아하셨죠.
장미를 피우는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하셨었죠.
유리 온실까지 만들어서 번식을 시키셨었죠.
세월이 지나며 5~6월이 되면 집 근처만 가도 장미 향기에 취할 정도였어요.
그렇게 알았어요.
아빠는 장미를 좋아하셨다는 것을요.
제가 장미 묘목을 20 만원 어치 사드린 거 기억하세요?
아빠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아빠는 가족을 위해 장미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때도 아빠가 좋아하는 장미를 키울 수 있었잖아요.
대문을 덮던 커다란 노란 덩굴장미 딱 하나뿐이었어요.
그 조그만 뒤뜰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무화과나무와 목단이 있었지요.
집 안팎은 온통 딸이 좋아하는 수선화였고요.
우리가 다 자리를 잡고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아빠는 언젠가부터 장미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특별히 노랑장미가 좋다고 하셨죠.
우리는 이리저리 돌아가며 장미 묘목을 사드리고는 했지요.
장미가 많은 계절에 돌아가셨으면 좋았잖아요.
아빠가 돌아가신 날, 우리가 함께 아빠한테 갈 때 노랑장미 화분을 가져갈 수 있을 텐데요.
아빠! 8월에는 장미가 없어요.
그래도 몇 번 화원 순례를 해서 노란 미니 장미를 가져간 적도 있었지요.
아빠! 나도 이제 내 삶을 살아요.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거 말하고, 하려고 노력해요.
아빠가 인생 2막을 열심히 꾸려 가셨던 것처럼요.
아빠의 마지막 순간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시던 그 모습이 내 모습이기를 기도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