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냄새가 전하는 따뜻한 온기, 청평 백암천이야기

시간이 머무는 온천, 마음이 머무는 사람들

by 정 영 일

[장작 냄새가 전하는 따뜻한 온기, 청평 백암천 이야기]

- 시간이 머무는 온천, 마음이 머무는 사람들.

청평의 조용한 골짜기, 백암천에는 26년이라는 세월을 품은 작은 온천이 있습니다.

단순한 찜질방이나 사우나를 넘어, 이곳은 시간과 사람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입니다.


2024년, 빨간색 외벽으로 단장된 건물은 마치 오래된 추억에 새 옷을 입힌 듯했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장작 냄새는 말없이 이 공간의 시간을 들려줍니다.


백암천의 하루는 새벽 5시, 장작불을 피우는 일로 시작됩니다.

고요한 어둠을 가르며 피어오르는 연기와 불씨는 단순한 열이 아니라, 정성 그 자체입니다.

불타는 나무 향이 코끝에 스며들면,

어릴 적 친구들과 감자를 깎고 군고구마를 구워 먹던 그 시절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 장작 냄새는 시간의 강을 건너와

오늘의 나를 포근히 감싸고,

묵은 마음을 차분히 정화시켜줍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은 중국 조선족 동포들입니다.

찜질방을 관리하는 실장님부터,

야간 카운터를 지키는 분,

구석구석을 정성스레 청소하는 분들까지

이 공간의 따뜻함은 모두 그들의 손길에서 비롯됩니다.


한국에 온 지 5년에서 10년. 익숙지 않은 타지에서 근면하게,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엔

묘한 안정감과 다정함이 함께 느껴집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낯설지 않은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그들의 꿈, 가족, 삶에 대한 태도는

‘이방인’의 것이 아니라, 이웃의 이야기였습니다.


비록 국적은 다를지라도

삶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곤 하는 3D 업종의 자리에서

그들은 묵묵히 제 몫을 해내며, 자신의 삶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10만 채 이상의 아파트를 매입했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흘린 땀과 시간이 만든 결과라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백암천을 자주 찾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가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사우나 구석에서 묵묵히 구두를 닦으시는 80대 어르신, 정갈한 손길로 머리를 손질해주시는 70대 이발사 선생님...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이젠 그분들이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외부에 다녀오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이분들과 나눠 먹는 조용한 식탁은 그 어떤 외식보다 정겹습니다.


말없이 나누는 따뜻한 웃음,.같이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

그런 일상이 쌓여 이 공간은 더욱 소중해졌습니다.


오늘 새벽,

찜질방에서 때밀리 아저씨가 주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은

그저 커피가 아닌, 사람의 온기가 담긴 인사였습니다.

그 인사 하나에 마음이 풀어지고,

그래서 나는 또다시 이곳을 찾게 됩니다.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곳이어서..


물론, 모두가 그런 따뜻함을 주는 건 아닙니다.

유독 발길이 닿지 않는 곳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1층의 백반집입니다.


나이드신 두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은,

처음에는 살가운 인사로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그 덕에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따뜻함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복숭아나 옥수수가 있어도.한 마디 건네는 인심 없이 그저 무심하게 지나가니,

언젠가부터 마음이 떠나 있었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결국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누구도 일방적인 따뜻함만으론 오래 머물 수 없기에,

가끔은 아쉬움과 함께 그곳을 지나칩니다.


청평 백암천.

이곳은 뜨거운 물과 장작 냄새, 그리고 정직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온정이 어우러진

소박하지만 특별한 공간입니다.


고단한 일상에 지친 마음을 녹이고 싶을 때,

그냥 이곳으로 가보세요.


몸이 먼저 따뜻해지고,

마음은 그 뒤를 따라올 것입니다.


(작가의 말)

3년 전, 이곳을 자주 찾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피로와 고요, 사람들의 얼굴과 장작 냄새, 그리고 나만의 사색이

아직도 내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습니다.

장작불도, 이발사의 손길도, 구두를 닦는 노인의 미소도

그저 스쳐갈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마음에 남아 나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 서정윤, 『홀로서기』


기억은 그렇게, 의미를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듯합니다.


읽는 분들에게도 그런 온기가 닿기를 바랍니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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