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너머에 남은 기억

by 정 영 일

[소음 너머에 남은 기억]

아침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요란한 기계음,

우리 집 바로 옆 주유소 세차장에서 시작되는 하루의 신호다.


명절을 앞둔 요즘이면 세차장에는 메뚜기 떼처럼 차량이 몰려든다.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차들은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고, 기계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은 채 쉼 없이 돌아간다.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물줄기와 솔이 차체를 훑는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그 소리는 어느새 동네의 배경음이 되어 하루를 채운다.


작년 이맘때, 나는 그 소리의 중심에 서 있었다.

1년 동안 그곳에서 일했다. 하루 많게는 800대, 2월 한 달이면 15,000대에 이르는 차량이 세차장을 통과했다.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차들 사이에서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물기 어린 장갑을 낀 손, 젖은 바닥 위를 오가는 발걸음, 피곤이 스민 눈빛.


세차 한 대에 평균 5,500원, 계산기를 두드리면 매출은 제법 묵직했다. 전기세와 지하수 비용을 제하고도 적지 않은 수익이 남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곧 우리의 여유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월급은 최저 시급을 기준으로 책정되었고, 고된 노동의 강도에 비하면 늘 빠듯했다.


그래서일까.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장기간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몸이 성해야 버틸 수 있고, 마음이 단단해야 견딜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시작할 수 있지만, 오래 머물기는 쉽지 않은 자리. 그 안에는 늘 떠나고, 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반복된다.


2월이 끝나면 사장은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20만 원의 특별 보너스를 건넸다. 그 한마디와 봉투 하나가 그 달의 위로였다. 누군가의 수고를 숫자가 아닌 말로 인정받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주유소 일은 흔히 3D 업종이라 불린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고. 때로는 무심한 말 한마디에 자존심이 상하고, 멸시 어린 시선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버텨냈다.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그때의 나는 기계 소리에 잠식되어 있었다.

귀가 먹먹해질 만큼 가까이에서 들리던 굉음은 퇴근 후에도 귓가를 맴돌았다. 물줄기와 솔이 부딪히는 소리가 꿈속까지 따라왔다. 하루가 끝나도 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같은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오지만, 이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음일 뿐이다. 소리는 여전한데, 나는 그 안에 있지 않다. 그 차이가 묘하게 낯설면서도 다행스럽다.


창문 너머로 늘어선 차량 행렬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다시 그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다시 그 소리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때의 나는,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살고 있었다. 요란한 기계음 속에서 젖은 장갑을 벗으며 느끼던 묵직한 피로,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오던 작은 위안.


오늘도 세차장 기계는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소음 너머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나를 조용히 떠올린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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