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걷는 시간

by 정 영 일

[기억을 걷는 시간]

자꾸만

하염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무 일도 없는 듯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이유 없이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린다


3년 전

청초호 산책로를 걷던

그 새벽이 떠오른다


아직 세상이 잠들어 있던 시간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조용히 나를 붙잡고 있던

그 길 위의 나


아침과 저녁

하루를 두 번 접어가며

걷고 또 걸으며

흔들리던 마음을

억지로 붙들어 놓았던 시간들


매주 몇 번씩

낯선 방에 몸을 눕히고

다시 길 위로 나서며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조용히 설계하던 날들


그때의 나는

버티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리워하고 있다


시간은 흘렀는데

나는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고


체력도

마음도

그리고 현실도


크게 나아진 것 없이

그저 하루를 겨우 넘겨내는 날들이 이어진다


눈물이 많아진 건

나약해져서가 아니라


견뎌온 시간들이

이제는

조용히 무게를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노래 한 구절에

마음이 내려앉는다


“어떻게 하죠, 이젠…”


그 말 한마디가

내 이야기인 것처럼

가슴에 오래 머문다


살아보려고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와 있는

나를 마주할 때면


조금은

야속해진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잠 속으로 숨어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그래서 지금의 이 글은

버티고 있는 내가 아니라


겨우

무너지지 않으려는

내 마음의 기록이다


그래도

이렇게 몇 자를 적어 내려간다는 건


아직은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주 조금이라도


다시

걸어보려 한다


그날의 새벽처럼

조용히

나를 붙잡기 위해서..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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