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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스타트업 인턴에 지원하다.

첫 지원에 대한 이야기

by RoyaltyProgram

나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탈선했다


상산고까지 와서 말이다.

나는 지금의 교육과정에 회의를 느꼈다.


모두가 문제인 걸 알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 사회,

나는 그런 체념이 싫었다.

내가 옳았음을, 적어도 나만큼은 나의 신념대로 살았음을

행동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탈선했다.

고등학교라는 시간을 스스로의 성장에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는 없었다.


여정을 시작하며 나는

화려한 대학 진학의 꿈,

모두에게 칭찬받는 모범생의 삶,

고등학생으로서 품을 수 있는

많은 꿈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정확히는, 나는

그 꿈들을 나 자신에 대한 믿음에 배팅했다.


‘내 생각이 맞고, 내가 제대로 성장한다면,

나는 반드시 더 큰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나는 내가 배팅한 모든 것들을 위해,

그리고 나의 소신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


그 길은 혼자였지만,

나를 지켜보며 응원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정보 선생님, 대회에서 날 격려해준 대학생 멘토님,

진심 어린 조언을 주었던 아버지.

그리고 몇몇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귀중한 인연들.


홀로 성장하는 건 어렵다. 정말 어렵다.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많은 가치를 포기해야 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시간이 지나 나는 3학년이 되었다.

변화하는 AI 시대 속에서,

나는 Genspark의 PPT 기능도, Manus도,

Computer Use 개념도 만들어봤다.


나는 시대보다 조금 빠르게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파워가 부족했다.


사람들은 내가 뭘 만드는지도 잘 몰랐다.

아니,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내가 만든 것이 잘 만든 것인지 아닌지도

세상은 판단할 수 없었다.


조금씩, 나는

사막에서 들고 온 물통이 비어감을 직감했다.


내 여정의 시작점에서 떠난 물들은 모두 마셨거나 증발했고

지금은 틈틈이 받아 놓은 ‘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느꼈다.

한마디로, 지쳤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이 학교를 떠나야 할 때라고.


‘팀’과 ‘자본’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경솔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 나는,

한 AI 스타트업 팀에

생애 첫 지원서를 냈다.


그 팀은 YC에서 W25에 선정된 팀이었고,

이미 시드 투자를 유치한 빠르게 성장하는 곳이었다.

내가 가진 작업물과 스토리를

한 시간 가까이 정리해 보냈다.

당연히 아무 반응 없을 거라 생각했고, 잊었다.


그런데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문자 답장이 왔고,

곧장 통화를 하게 되었다.


대표님과의 통화.

나는 신이 났다.

비슷한 비전을 가진 사람과의 소통.

내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주, 나는 기차를 타고 회사로 찾아갔다.

2시간 동안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대표님은 조용히 들어주셨다.


점심을 먹고, 팀원들과의 대화도 나눴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신기하게 들어줬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겁이 났다.


대표님은 지쳐 보였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타트업은 매년 업계의 혁신을 증명해야 해요.”


내가 항상 상상했던 그 ‘현장’이었지만,

막상 직접 마주하니 내가 상상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책임이 느껴졌다.


사무실에서 몰입하는 팀원들 사이에서,

그들의 간절함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꿈꾸던 게 과연 스타트업이 맞는지를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대표님은 나에게 인턴십과 수습 기간을 제안해 주셨다.

조건도 좋았다.

정식 합류를 가정한, 꽤 구체적이고 따뜻한 제안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생각이 많았다.

꿈을 보고 온 날인데, 기분이 기쁘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3일을 잠도 못 자고 고민했다.

어른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스스로와도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곳에 지원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었다.


“저는 깨져야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손실 함수가 제대로 동작해야 수렴하는 법이죠.
학교에서 더 이상 깨질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지원했어요.”

결국,

좋은 평가와 제안이 있었음에도

나는 합류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선택은 빠르고 단호할수록 좋다.

맞았다면 더 좋고,

틀렸다면 그만큼 더 제대로 배울 수 있으니까.

나는 영화 도깨비의 이 대사를 좋아한다.


“너의 인생에서는 오직 너의 선택만이 정답이다.”


내 모든 선택은 나의 인생에 있어 언제나 정답이었다.

그리고 이번 선택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선택을 믿는다.

그리고 내 신념을 따른다.

나는 이번 여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깨졌고

지칠 때는 오아시스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팀은 충분한 자본, 인력, 파워를 가진 팀이었다.

하지만 이 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직감이 있었다.

아직 그 파워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기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닫는 문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번에 배웠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큰 파워를 감당할 수 있는

나 자신으로 성장해 있을 거라고 믿는다.

후회는 없다.


나는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깨짐’을 경험했고

그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

Not every open door is meant to be walked through.
Sometimes, wisdom lies in closing it yourself.

“I’d rather fail on my own terms than succeed on someone else’s.”
— A philosophy for builders, not fol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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