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로 해석해봄

by 톨란

이 영화 톨란 지수는

꿀잼




그루누이가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만 골라 죽이는 걸 비롯해 지뢰처럼 흩뿌려진 여혐 포인트들이 개빡쳤으나

동시에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영화

그루누이는 왜 그 여자들을 죽였을까?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로 해석하면 좀 이해가 된다




발디니 경쟁 조향사인 펠리시에가 만든 향수 이름도 아모르 앤 프시케라고 힌트를 주는데

신화 내용 잘은 기억 안나지만 대충 이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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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프시케라는 아름다운 여자가 살아따

얼마나 존예였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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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테가 인간 주제에; 하고 빡쳐서 에로스를 살수로 보낼 정도로;

프시케를 화살로 맞춰서 세계 제일의 추남만 사랑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였음




근데 정작 에로스가 프시케랑 사랑에 빠져버림

화살에 찔린 상처에 마법의 물을 발라 낫게 하고 기억은 사라지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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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쨌든 프시케는 여신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에게 구애를 하지 않게 됨

하도 그러니까 신전에 가서 상담한 결과

프시케는 괴물 같은 남자가 아니면 결혼할 수 없다는 신탁이 내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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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고난이지만 그래도 프시케는 동네 유명한 괴물을 하나 찾아가서 같이 살겠다 함

근데 이 괴물이 이상한 게 좋은 옷 비싼 밥 포근한 잠자리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면서도

절대 자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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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이 들기도 했고, 혹시 자존감이 낮을 뿐인 존잘남은 아닐까?

프시케는 두근두근 남편깡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느날 밤 남편이 잠들고 나서 몰래 촛불을 밝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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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세상에나

홀리한 이목구비의 미소년신 에로스였던 것

이제 행복한 결혼생활을 즐길 일만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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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차 실수로 뜨거운 촛농을 에로스의 얼굴에 떨궈서 들켜버림

실망한 에로스는 프시케를 떠나고 둘의 사랑은 망했다고

후속담도 있지만 일단 유명한 건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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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화에서 에로스는 육체적 사랑, 프시케는 정신적 사랑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참고로 심리, 정신 관련된 단어에 psych- 붙는 거 어원이 프시케)

그리스인들은 육체와 정신 양면이 모두 조화로운 사랑을 이상적인 사랑으로 봤던 것




육체적 사랑만으로는 어린아이 모습의 에로스처럼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불과할 뿐이고

정신적 사랑만으로는 끊임없이 불안한 프시케처럼 사랑의 존재를 증명해줄 물질적인 근거에 매달리게 되기에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3.gif 장미의 영혼을 뽑아내는 과정

영화에서 향기는 곧 영혼이라고 하는데,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게 비유가 아주 찰떡이다

근데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게 또 하나 있죠?

그건 바로 사랑

영화에서 향기 = 영혼 =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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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향기가 없고 따라서 영혼이 없는 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향기를 눈에 보이는 액체로 증류해서 소유하고 싶어하는데

그러니까 그루누이가 향수로 만들고자 한 궁극의 향기는 곧 자신이 갖지 못한 영혼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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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루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찾아다니는데 얘가 결국 발견한 게 여자였다

여자만 골라 죽이는 이게 여혐이기도 하지만 다르게도 해석된다고 생각함

그루누이가 붉은 머리 여자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평생 사랑받아본 적 없어 사랑을 모르면서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사랑을 느낀 대상을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

가장 아름다운 영혼은 사랑이 깃든 영혼이라는 진리를 자기도 모르게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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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여자들을 죽여 향수로 만들고자 하는 그루누이의 탐구는

사랑의 본질이 물질에 있는가 아니면 그 너머 붙잡을 수 없는 정신의 영역에 있는가 하는 고민이다

사랑이라는 주관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물리적인 향기로 환원할 수 있는가

그루누이는 그게 가능하다는 에로스적 사고에서 출발해서 미친 살인마 짓거리를 일삼고 자신감을 얻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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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가면 난교파티 벌이는 가운데 홀로 서서 아무런 희열도 느끼지 못하는 허무한 얼굴로 눈물을 흘린다

이름도 모르고 말 한번 안 섞어본 첫번째 희생양을 회고하면서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육체 전부를 오일에 절여서 집어삼켰어도

결국 자기가 정신을 죽여버린 사랑에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루누이는 프시케 같다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신벌 아래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면서도

사실 그 누구보다도 절박하게 사랑의 실증에 매달렸다는 점에서

촛불로 어둠을 밝혀 에로스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했던 프시케 같음

에로스에게 증명을 요구하다 프시케를 죽여버린

실패한 이상주의 싸이코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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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래서 그루누이가 죽인 여자들이 특별한 체향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루누이가 자신이 느낀 사랑을 향기로 인식한 것일 뿐...

첫번째 희생양과 마지막 희생양의 외모가 닮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했다

거지와 공주한테서 같은 향이 날리 없자나 공통된 것은 그녀들을 향한 그루누이의 사랑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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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그루누이가 마지막 희생양인 로라 죽일 때

침대에 누운 로라가 눈을 팟 뜨면서 몽둥이를 든 그루누이랑 시선을 마주치잖아

여기서 프시케와 에로스 구도 연출한 거 좋았다
사랑을 믿지 못해 직접 확인하고자 한 프시케 그루누이가 에로스 로라에게 들켜버린 것

눈이 마주친 그 찰나, 의심의 순간에 로라는 죽었고 사랑은 달아나버리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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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프시케와는 별개로 또 영화 보면서 한 생각은

그루누이가 마지막에 죽는 결말이 마음에 든다는 것

여자들을 죽여서 그 전체를 하나의 향료로 만드는 게 마치 그 사람의 인생을 통으로 응축시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에서 그루누이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완전하게 다루는 것도

마치 그루누이의 인생을 한 병의 에센셜 오일로 압축시키는 것 같았다

동물기름에 향을 입혀 거즈에 스미도록 하듯이

영상에 그루누이의 삶을 녹여내서 영화필름 위에 씌운 느낌




여자들로 만든 향수를 완성해 몸에 뿌리자 처형장의 관중들이 열광하는 장면이랑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자 환호하고 박수쳤을 영화관의 관객들이 겹쳐보였다

물론 나는 집구석에서 작은 화면으로 봤지만 영화관에서 봤으면 정말 좋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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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관중들도 관객들도 모두

그루누이와 같은 방식은 아니겠지만 절대로 그보다 작다고는 할 수 없는 열망으로

사랑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거 같다




※ 다른 사이트에도 올린 적 있는 소감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