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은 된 일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00이 엄마예요. 우리 아이가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 얼마 전에 집에 와서 선생님은 정의로운 사람 같다고 하더라고요.”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 마주친 중학생 학부형의 말이었다. 내가 ‘정의로운 사람’ 같아서 좋다고 한 그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칭찬의 말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뒤 교실로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했다. 수업 시간에 정의에 대해 다뤘던가? 아니면 혹시 그 일 때문일까?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읽고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다. 수업 도중 한 학생이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는데, 내 교과목 외의 내용이었다. 그때는 안다고 생각하고 답을 해 주었고, 몇몇 학생은 그것을 메모하기까지 했다. 그날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언가 찜찜했다. 아뿔싸, 내가 잘못된 개념을 알려준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잊었지만.
그때만 해도 20대 신입 교사였던 나였기에 완벽한 정보 전달자이자 교육자이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나 당당하게 잘못된 정보를 주다니. 학생들과 나 자신에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음 수업 시간에 미안하다고 하고 선생님이 틀렸다고 말할까? 아니야, 어차피 내 교과목도 아니고 시험에 나올 것도 아닌 데다가,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을 텐데 뭐… 사과하면 체면이 말이 아닌데…
다음 날 출근했을 때 나를 삼촌처럼 도와주시던 연세 지긋하신 동료 선생님을 만나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어차피 학생들도 잊어버리지 않을까요? 뭐, 그렇게 큰일도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 선생님께서는 “학생들도 알아요, 선생님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하면 오히려 학생들이 선생님을 더 신뢰할 거예요. 그러니 사과하는 게 어때요? 잘못된 내용도 바로잡고. ”
그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 선생님이 지난 시간에 잘못된 내용을 알려줬어요.’라며 제대로 된 내용을 알려줬다.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네.‘하며 대답하고, 지난 시간에 메모를 한 학생은 그 쪽을 펴서 그냥 수정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그 학급에 속한 학생의 학부형으로부터 ’아이가 선생님은 정의로운 사람 같아서 좋대요.‘라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이다. 짧은 순간의 ‘정직‘을 ’정의’와 연결하여 너무나 멋지게 나를 생각해 준 그 학생의 생각과 마음이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학생이 그 일로 인해 ‘정직’과 ‘정의’에 대한 짧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도 감사했다.
수필가 장영희 교수의 ‘미안합니다’라는 수필이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그녀 또한 사과할 일이 생기지만 내가 잠시 그랬던 것처럼 망설이다 사과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던 중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계기로 사과할 때에는 ’체면’ 따위는 중요치 않고, 사과는 상황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그 학생에게 사과하기로 하며 수필은 끝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면 마치 흠을 보이면 안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상대보다 많거나 직위가 높거나 한 경우에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착각은 사과를 하면 ‘체면’이 깎이는 것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체면’의 정의는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그렇게 보면, 잘못을 하고도 사과를 하지 않으면 떳떳할 수 없으니 오히려 ’체면’이 손상되는 것이고, 오히려 사과를 해야지만 ’체면‘이 서는 것이다.
이외에도 잘못이나 실수를 했을 때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또 있다. 많은 경우, 그 잘못이 너무 사소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무겁게 마음을 짓눌러서 사과를 못하게 된다. 또는, 그것이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사과하면 나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킬 것 같기에 사과하기가 힘든 경우도 많다. 오히려 사소한 일에는 사과를 쉽게 하고, 때로는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상황에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 진심 어리지 않은 사과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가벼운 사과, 진심 어리지 않은 사과를 너무 자주 하면 말하는 사람은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 정직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정말로 사과해야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서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 않는 사과, 체면 불구하고 하는 사과야말로 상황을 호전시키고 본인에게나 대상에게나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 생각한다. 체면 불구하고 ’미안합니다‘라고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