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손바닥만 한 정원이 있다. 이 작디작은 땅에 온전히 잔디만 남겨두기가 왜 이리 힘든지… 애써 씨 뿌리고 물을 주어 싹 틔운 잔디밭인데, 어디선가 잡초들이 한 번 자리 잡고 퍼지기 시작하면 그렇게 빨리 퍼질 수가 없다. 그러면 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뽑아야 하는데 무릎도 아프고 영 쉽지 않다. 그러다 작년 여름에는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지 하며 두었다.
그렇게 두었더니 듬성듬성 남아 있는 잔디도 너무 크게 자라서 억세진 데다가, 잡초들이 마구 퍼져서 이꽃 저꽃 피워 일정하지 않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을 하며 홈오피스를 한다는 남편에게 시간이 있으면 잔디깎이로 그냥 모두 밀어버려 달라고 했다.
퇴근을 하고 보니 정원 한가운데에 둥그렇게 잡꽃들이 남아 있었다. 남편이 땅에 둥근 꽃밭을 만들어 일부러 심어놓은 것처럼 잡꽃들을 남겨 놓은 것이다. 남편에게 “아니, 왜 저렇게 해 놨어요?”했더니 “사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예뻐. 저것들도 꽃이잖아. 잡초라고 하니까 그렇지, 예쁜데… 그리고 벌들이 좋아해. 벌이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 그냥 저렇게 두자, 응?”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보기에 좋았다. ‘잡초, 잡꽃‘이라는 이름을 떼고 보니 말이다. 애초에 ’잡초‘라고 규정한 것은 사람들이니, 그들은 그렇게 불리는 것이 퍽이나 억울하겠다. 또, 꿀벌 입장에서는 잔디보다는 꽃들이 훨씬 중요하다. 다시 보니 꿀벌들이 몇몇 꽃들에 앉아 있었다. 보고 있자니, 예전에 지인과의 대화가 생각이 났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아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돈이 아주 많아서 휴가 때마다 호화로운 크루즈를 즐기고 비슷한 경제적 계층끼리의 모임에 나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내게 “우리 같은 비주류는 이해 못 하죠.”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치 나를 ’잡초’ 취급하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상했다. 물론, 무슨 의도로 ’비주류‘라는 말을 했는지 이해는 갔지만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내가 비주류라니…
‘주류‘라는 말은 여러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사전에 나오는 의미들 중 고르라면 ’조직이나 단체에서 다수파‘를 이른다기보다는 ‘중심적 부류,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치는 부류‘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 말의 맥락상 ‘주류‘는 ‘돈이 매우 많아서 일반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을 뜻했다.
말이나 생각의 기준과 범위가 달라지면 ’주류‘의 의미는 달라진다. 범위나 기준이 하나의 정당인지, 나라 전체의 정치인지, 또는 한 나라의 경제인지 등.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무엇을 범위로 잡든 결국 매우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주류에 속한다고 하는 것 같다.
잔디는 경관뿐 아니라 환경 보호와 개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니 이런 역할에 초점을 맞추면 잔디는 주류에 속하는 식물이다. 하지만 꿀벌들에게는 ‘잡초, 잡꽃’이라고 하는 것들이 ‘잔디‘보다 더 중요하다. 즉, 꿀벌의 삶에 있어서 ’잡초, 잡꽃’이 주류인 것이다. 그리고 그 꿀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류는 그 꿀벌의 가족에 해당하는 그의 무리들과 그 자신이다.
결국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인생의 주류’, 즉 매우 중요하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나도,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 분들도 누구 하나 빠짐없는 주류, 그중에서도 삶의 주류의 가운데 줄기이다.
내가 피우는 꽃들이 누군가에게는 잡꽃으로 보일지언정, 내게는 찬란한 꽃들이고, 나의 가족과 나의 학생들이 꿀벌들처럼 내 인생의 꽃밭에 들어와 살포시 삶의 일부를 얹어 준다면 그들이야말로 내게는 주류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