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 23

by 정빈

1018 .23


어제는 책 세 권을 들고 서울숲에 세 번째 방문을 했다. 첫 번째 방문은 상당히 더웠었는데 거기다 주말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부채와 손풍기를 들고 돗자리를 펴 앉아 있거나 산책을 하거나 아니면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의 첫 번째 방문은 그냥 사진을 찍고 싶어 방문했던 것이었는데,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 나는 이 방문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월 들어 시작한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다니기를 시작했는데, 첫 시작이 해방촌의 어느 작은 카페였다. 전에도 여러 카페를 가보았지만 정말 작은 카페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친절한 사장님이 계셨다. 사장님은 정말 커피에 진심인 사람인게 느껴질 정도로 나의 취향을 고려하여 몇 가지 원두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고민하다 고른 원두로 내려진 커피는 정말 먹으면서 동공이 동그래졌다. 너무나도 맛있었다. 음식이건 음료건 정말 맛있어도 그냥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해 왔었는데 커피를 마시는 순간 그런 감탄이 내 목소리를 통해 나와버렸다. 사장님이 기쁘셨는지 다른 원두의 커피를 하나 그냥 내려주셨다. 연이은 놀람이었다.

커피 설명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요즘 카페 투어를 다니고 있는데,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를 정하려면 인터넷에 올라온 리뷰만 보고 갈 수밖에 없어서 어렵다는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 말에 공감해 주시며 사장님은 몇 군데의 카페와 그 카페의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음료가 맛있었는지 등등 여러 장점들을 알려주시며 그 이유들로 추천해 주셨다. 사장님의 커피에 대한,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는 진심들이 느껴져서 나는 하나하나의 퀘스트를 깨듯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숲의 두 번째 방문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저번 방문이 그랬듯, 서울숲을 기대하기보다는 커피를 기대하면서 가게 되었다. 내가 내린 곳부터 카페를 가기 위해서는 서울숲을 가로질러가야 했는데, 카페를 가면서 본 풍경과 날씨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는 점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까, 서울숲 벤치에 앉아서 마실까 고민했던 것의 해결책이 되었다. 우선은 카페에 도착해 원두를 고민하다 짧은 맛 설명을 보며 골랐다. 어떻게 마시면 더 맛있고 어떤 맛이 나고 하는 그런 설명들을 듣고 커피 노트와 커피를 들고 나왔다. 커피 노트에 적혀 있던 청사과, 샤인머스캣, 멜론향. 이 간단한 설명들은 이 커피의 맛을 왜 이 세 가지로 가정지었는지 알 정도로 딱 그 세 가지 맛이 느껴졌다. 커피 한 모금, 그리고 입 맛 다시기를 계속 반복하며 걷다가 벤치 한 곳을 정해 자리를 잡았다.


날씨와 풍경이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고 다시 앉아서 노래를 듣다가 책을 읽었다. 헤드폰에 흘러나온 음악들과 외부 소리를 완벽하게 차음 하지 못한 헤드폰 사이를 비집고 들려온 바람에 흔들린 나무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들이 나의 시야에 보인 햇빛에 닿인 그 모든 풍경들과 어우러져 함께 아름다웠다. 그런 환경들 덕분이었는지 독서에 집중력 또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높았다. 여름만 해도 숨 막힐 것 같던 그런 곳이었는데, 계절이 시원해진 만큼 서울숲은 싱그러운 곳으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아직 추천받은 카페 중 갈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커피도 맛있었지만 서울숲의 그 분위기가 갈증을 일으켰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는 쉬는 날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항상 그렇듯 상상했던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이란 맞다닥뜨리는 순간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상상이란 것에는 조금의 기대가 있어서 그런 걸까?


다시 돌아가, 돌아온 휴일을 맞아 세 번째 방문을 했다. 두 번뿐인 방문인데, 두 번동안 지도를 보며 걸었던 길을 지도 없이 처음 걸어가 보는 길을 따라서 카페에 다다랐다. 저번과는 다른 원두의 커피를 손에 감싸고 나와 앉아 있을 벤치를 찾아 앉았다. 카메라를 깜빡하고 두고 온 나 자신을 조금 원망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그날은 살짝 바람이 불고 기온도 저번보다는 낮아져 있었다. 옷소매 안에 손을 넣어 입김을 불어넣기도, 목에 감싸가며 체온으로부터 체온을 지키려는 행동이 반복되는 그런 날씨였다. 춥다는 것은 하늘이 공활하다는 것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을 비추는 햇빛이란 무한한 맑음이다. 그런 하나하나의 증거들이 저번과는 다른 계절로 다가왔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 하루였다.


조금은 상상과는 달랐던 세 번째 서울숲 방문을 이유로 새로운 인식을 주었던 서울숲은 우선 올해는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음 방문은 초록 잎들이 품은 적갈색의 익은 잎들이 초록을 전부 덮게 되거나, 그러다 전부 나뭇가지들로부터 분개되어 땅에 나뒹구는 그런 계절이 오면 다시 방문이 이루어지게 되지 않을까 한다. 또 그때는 좋았던 기억이 있었던 내 발걸음 보단 다른 발걸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다음번엔 조그만 들판에, 그리고 그 위에 높이 솟아 오른 나무들이 하얀 눈으로 젖어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며 다음 방문을 멀리 기약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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