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산들바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날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The Frog)'의 도입부에서 이야기하는 문장이다. 처음에는 이말이 무슨 말을 의미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 대사는 18세기 영국 경험론 철학자인 조지 버클리가 한 말을 인용하였다. 버클리는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나는가?"라며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 라고 하였다. 결국 지각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펜션 운영자 전영하(김윤석)과 모텔 운영자 구상준(윤계상) 처음엔 이 둘이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고, 서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이웃 사촌이라고 생각 했지만 점점 시대적 배경이 다름을 알게 됐다. 두 사람과 그의 가족 친지들은 서로 비슷한 일을 당하면서 닮은 것 같아 보이지만 차이점이 극명하게 보이고 있다.
이야기는 중반부까지 아무런 설명 없이 불친절 하다. 하지만 나에겐 퍼즐 맞추듯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특히 매번 나오는 이 문장이 과연 무슨 뜻일지 가장 먼저 유추 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게 되면 '쿵'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기 때문에 들을 수가 없다. 나에겐 들리지 않지만 현상은 일어나게 된 것이고, 그로 인해 그 주위는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 된다. 결국 나무가 쓰러졌을 때 풀과 주위에 있던 작은 짐승, 개구리는 나무에 깔리거나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쿵 소리에만 반응한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 오는 건 그 소리 뿐이니까.
이 드라마는 그 개구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이 그래서 The Frog 일지도 모른다. 개구리는 누군가 무심코 던진 돌에도 죽을수 있는 존재이고, 구상준의 모텔에서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의 말처럼 그냥 그가 지나가는 길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끔찍하게 인생을 밟히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타고난 술래라는 게 있다고 보거든 난,
계속 뒤쫓고 뛰는게 체질인 술래
특히 이 개구리 같은 사람들을 모두 알고 있고 이야기를 이어 주는 경찰역으로 나오는 윤보민(이정은)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아닌 본능에서 나오는 직감과 관찰력으로 움직이는 타고난 술래. 술래는 숨어 있는 아이, 즉 증거나 범인을 계속 뒤쫓고 뛰는게 체질인 사람이다.
젊은 보민에게 "너 그냥 끌려? 살인, 현장, 피 냄새, 범인, 너 이런거 재밌어?" 라고 물어보는 선배 형사의 말에 나도 끌린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범죄 스릴러물을 가장 좋아하고 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범죄심리학을 배우거나 시나리오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욕구도 들었다.
아이 여기서 죽었습니다.
나는 그걸 알았고, 숨겼습니다. 미안합니다.
전체적으로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스릴러 영화 일거라 생각했지만, 캐릭터의 다음 행동을 관찰하게 되는 서스펜스 영화 였다. 구상준의 사건이 먼저 발생하고, 전영하의 사건이 나중에 발생하지만 어느 순간 두 사건이 교차하게 된다. 보통 살인이 일어나게 되면 살인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를 다루었지만, 이 드라마는 살인 사건이 일어 났을 때 그 주변까지 미치는 파동에 집중하고 있다.
전영하는 말수도 적고 외골수적 기질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죽음을 알고도 그걸 감추고 숨겼다. 결론적으로는 윤리적 나태로 인해서 불의와 타협한 결과 눈덩이처럼 커진 불의가 악순환처럼 다가오고 주변 사람들을 덮치고 말았다. 전영하의 이런 부분이 참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적인 미장센의 색감과 독특한 OST는 서스펜스에 맞게 잘 어우려져 긴장감을 더해주었으며, 배우의 연기도 빈틈이 없어 몰입 되었다. 특히 유성아(고민시)라는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무언가를 초월한 소름끼치는 살인자의 모습이 아닌 고등학생들에게 돌맹이로 습격 당하거나 전 연인과 싸우다 힘에 밀려 도망가는 장면, 전영하의 딸과 고군분투하며 싸우는 등 현실적인 모습도 함께 보여 주어서 우리 주변을 둘러 보면 있을 만한 캐릭터 같은 느낌을 받아 더욱 공감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최근에 본 드라마 각본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연출은 중반부 조금 느슨하고 불필요한 내용도 있어 보였지만 도입부와 후반부는 괜찮았고 재미 있게 보았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유성아가 전영하의 가족을 살해 협박하지만 이에 그치고 마는 장면이나 펜션에 계속 있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한 개연성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