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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의노래 Aug 05. 2022

오페라 한 곡 땡겨보실래요?

나도 오페라스타!

<출처: 서대문문화체육회관 홈페이지>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고작 삼 개월 연습으로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고?

얼토당토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다, 오페라라는 거.'


드디어 수업 첫날이 되었다. 퇴근시간 러시아워에 걸려 이미 수업에 지각한 나는 '오페라'라는 단어가 주는 생경함과 고고함에 지레 겁먹어 선뜻 강의실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굳이 화장실에 들러 머리를 매만진 후, 최대한 시간을 끌며 천천히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염탐하듯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굳게 닫힌 문을 노려보던 중, 강의실에서 들리던 남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웅성웅성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이제 연습에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나는 깊은 심호흡과 함께 주뼛주뼛 강의실 문을 열고 고개부터 빼꼼히 집어넣고는 슬그머니 강의실 안을 훑어보았다.


'어라, 수강생들 연령대가 생각보다 높네. 그런데 남자가 너무 적잖아.'

수강생 중에는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모습도 보이고, 중년의 나와 동년배인 듯한 여성들도 꽤 많이 보였다. 모집요강에는 여성 스무 명에 남성 열 명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역시나 남성 참여율은 저조한 듯했다. 대략 스무 명 남짓의 여성들과 세 명의 남성이 전부였다.

'이 구성으로 마지막 날 공연은 가능하려나? 어쨌든 큰맘 먹고 왔으니 일단 수업이라도 들어보자.'


내가 강의실 밖에서 문과 눈싸움을 하고 있을 시간에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연출가 선생님은, 나를 필두로 몇몇 지각생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다시금 간단하게나마 수업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연출가에 따르면, 우리 수업의 수강생은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분포하고 있고, 믿어지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프로그램 안내에 나와 있는 대로 이 수업이 끝난 후 진짜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우리 수업을 이끌어 줄 성악가 선생님의 소개가 끝나고, 간단하게나마 수강생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마련되었다.


수강생들이 자기소개에서 밝힌 수업 참여 이유는 다양했다. 최고령자임을 자청한 칠십 대의 여사님은 오로지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서초구에서 서대문구에 있는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칠십 대 남자 어르신은 언어재활 치료를 위해 노래를 시작한 이후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삼십 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얼마 전 아이의 돌잔치를 치르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제각각 다양하지만 수업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오페라가 뭔지는 잘 몰라도, 그저 노래가 좋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오페라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 입 밖으로 발성되지 못한 내 가슴속 소리들이 밖으로 뛰쳐나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노래라는 것을 선택했고, 그 간절함이 저녁 시간 남편과 어린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버선발로 나를 뛰쳐나오게 한 것이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자기소개를 하는 수강생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요즘 말로 '갑툭튀'라 할 만한 낯선 애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작년에 오랜 직장생활을 끝내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이후, 내가 해 온 것들은 모두 혼자 하는 것이었다. 운동도 취미생활도 모두 혼자 배워 혼자 하는 것들. 그런데 일 년여 만에 여러 사람과 팀을 이루어 혼자가 아닌 구성원으로서 함께 한다는 사실에, 나는 뚝배기 안의 순두부가 끓어오르듯 몰랑몰랑 설렘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로지 노래라는 공통 관심사로 모인 이 사람들의 열정과 순수함이 그들을 예뻐 보이게 했고, 나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고, 함께 해도 된다는 안도감을 내 안에서 꺼내 보일 수 있게 해 주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드디어 노래가 시작되었다.

'쨍그랑!'

강의실 어딘가에 유리잔이 있다면 온몸을 관통하는 고주파 소리에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 못 해 당장에라도 이런 핏발 서는 소리를 내며 깨지지 않았을까. 서늘한 유리를 고드름처럼 더욱 서늘하게 만들 만큼 높은 피치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우리가 그리고 내가 과연 오페라 공연을 할 수 있을까라는 가슴속 의문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어서 도망가야 한다며 나를 강의실에서 끌고 나갈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가슴팍에 팔짱을 끼고 터져 나오는 부정한 의심을 진정시킨 채, 다른 사람들에게 질세라 가늘고 귀신같은 목소리를 쭉쭉 뿜어냈다.


'안될 거 뭐 있어. 부끄러워도 그건 나의 몫일뿐. 이왕 시작한 거 어디 끝까지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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