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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의노래 Mar 06. 2023

주방방위군을 추앙하다.

설거지하는 남자가 행복하다. 

"자~알 먹었다! 여보, 잘 먹었어요! 나 화장실 다녀올 때까지 설거지 그대로 둬. 

진짜야! 절대로 설거지하면 안 돼!!"


'흠... 화장실 가 있을 동안 설거지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내 남편은 삼식이다. 육아휴직 2년 반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삼시 세끼 집에서 밥을 먹은 삼식이. 복직 후에도 저녁은 반드시 집에서 먹는 가식남(家食男). 게다가 주방에 들어가면 지구에 종말이라도 오는 듯, 남편의 눈에만 보이는 주방한계선을 목숨 걸고 지켜내는 자주 주방 방어남(防禦男). 


남편이 이렇게 된 데에는 유전자를 통해 전달된 선천적 주방방어력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사실 '삼식이 남편 = 자상함'이라는 자의적 해석을 스스로에게 주입해 온 나의 과오 역시 한몫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나의 주방지킴이 능력치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였고 우리 가족에게 주방은 나의 성장사를 보여주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 되어 코로나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가족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나 천재지변도 발생하지 않은 평범하고 평범한 어느 날. 내가 멀쩡히 주방에서 식후 그릇 정리를 하고 있던 지극히 일상적인 어느 날. 남편이 떡하니 주방한계선을 넘어 싱크대 탈환을 선언했다. 


"여보,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쉬어."   

나는 의심가득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되물었다. 

"뭐라고? 왜?" 

"당신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해서 피곤하잖아. 내가 화장실 다녀와서 설거지할 테니까 그때까지 설거지하지 말고 그냥 둬. 진짜야! 절대로 설거지하면 안 돼!"


나는 남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혹시나 중의적인 표현은 아닐지, 아니면 설거지는 내가 하길 바라면서 생색내기용으로 말만 저렇게 하는 게 아닌지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윽고 나는 결단을 내렸다. 고민할 게 뭐 있겠는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남편의 의중 따위 내가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들리는 대로, 남편이 말한 그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 알았어. 쌩유~."

대답하기가 무섭게 나는 도서관에서 새로 빌려 온 책을 들고 잽싸게 소파 깊숙이 엉덩이를 묻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은 저녁 먹은 그릇이 쌓여 있는 싱크대를 보며 특유의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당신 말 잘 듣네? 언제부터 내 말을 이렇게 잘 들은 거야?"

남편은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는 듯 이내 귀에 이어폰을 끼고는 싱크대를 향해 돌아섰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딸아이는 샤워를 마치고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 읽기 시작한 내 책은 어느새 클라이맥스를 향해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슬슬 소파에 묻은 엉덩이에 땀이 차고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 때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남편이 설거지를 시작한 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한쪽 귀는 싱크대의 물소리에 집중한 채 눈으로는 계속해서 책을 더듬어나갔다. 


드디어 설거지를 끝내고 시계를 흘끗 본 남편은 내게로 돌아서며 말했다. 

"와~설거지하는데 한 시간이나 걸린 거야? 내가 진짜 느리긴 느리구만. 여보, 나 이제 씻을게."


그제야 남편은 늦은 샤워를 할 수 있었고, 남편이 씻고 나왔을 무렵 딸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갑자기 설거지를 다 하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혹시 회사에서 당신 책상 뺐어?"


농담을 할 수 없으면 죽음을 달라고 할 만큼 평소 대화의 90%를 농담으로 소화하는 남편이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여보, 내가 요즘 느낀 게 있는데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잘 사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내 가족과 웃으면서 즐거운 현재를 보내는 게 행복 아니겠어? 그래서 조금 피곤하더라도, 하루하루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요즘 퇴근해서 당신 얼굴을 보면 항상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고 엄청 피곤해 보이더라고. 앞으로는 내가 대신 설거지 할 테니까 그 시간에 당신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쉬어."  


순간 나는 흠칫했다. 

'이것은 사랑고백인가?'

남편은 현재의 행복을 위한 결단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남편이 피워내는 몽글몽글한 사랑 고백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남편은 매일 설거지를 한다. 어릴 때부터 마실 물조차 어머님이 떠다 주셔야 할 만큼 주방과는 담쌓고 살아왔던 남편이 스스로 주방에 들어가 꼬박 한 시간씩 설거지를 한다. 내가 첫 아이를 유산하고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조차 주방과 내외했던 남편이, 커피 한잔도 직접 타기 싫어 나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며 구걸하던 남편이 매일 주방에 가서 설거지를 한다. 


나이 50이 다 된 고집세고 가부장적인 중년의 남자가 자기 습관과 가치관을 바꿀 가능성은 어림잡아 몇 프로나 될까? 잘은 모르지만 꽤나 힘들거라 쉽게 짐작되는 그 일을 우리 집 삼식이 남편이 해 내고 있다. 죽어도 할 수 없다던 주방일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앞서 일어났을 엄청난 가치관의 지각변동을 남편은 어떻게 받아들인 것일까? 어느 순간 맞닥트린 행복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깨달은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강인한 자기 주도력.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 시간 동안 설거지를 하면서도, 나의 편안함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는 그것은 남편만의 사랑의 표현이자 고백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올챙이 배를 한 50이 다 된 중년 남성의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추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추앙의 대가로 남편의 설거지 횟수에 비례해 늘어난 수도세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편!! 수도세는 내가 낸다! 남편은 마음껏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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