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

by 협주

오랜만에 집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집은 자주 가지만,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집에선 다소 무뚝뚝하고 말없는 아들 스타일이다. 그래도 엄마랑 둘이 있으면 비교적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자연스레 그렇게 되기도 하고, 내가 더 그럴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문상훈님이 유튜브에서 한 말이 참 멋있었다. "미시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아주 사소한 얘기.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애정표현은 제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가장 자세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문상훈님은 자신이 요즘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효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혹시 주변에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다스러운 사람이라고 넘기지 말고, 그 사람이 나를 참 좋아하는구나 생각해주라고.

어쩌면 나는 누군가들에게 애정이 들한 사람이었나. 어느 시기의 난 분명 내 얘기를 많이 안 했다. 심지어는 그 기간동안 가장 교류가 잦았던 이들에게도 내 속의 이야기를 꺼내길 주저하던 때가 있었다. 내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고 혹은 청승떠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작년에 논문쓰면서 많이(어쩌다보니?) 고쳐졌다. 졸업을 1년 먼저한 절친한 형과의 대화 속에서 논문의 시작점은 나 스스로에 대한 돌아봄과 인정, 그리고 쓰다듬인 걸 깨달았다. 나는 바보일 수 있는 존재고(에브라), 다 안다고 착각했던 멍청이일 수 있는 존재고 그래도 괜찮다! 그럼에도 연기 잘만 할 수 있으며 논문도 잘 써질 수 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논문을 죽죽 써내려갔다. 한번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사랑하고 잠깐 미워할뻔했지만 고마웠다 예종).


암튼 오랜만에 나눈 엄마와의 대화주제가 좋았다. 엄마는 우리 집의 연대기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동산이나 지리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산발적으로 나오는 주제였지만, 이렇게 선형적으로 연결되어 들은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은 결혼후 내가 태어나기 이전까지 5년동안 이사를 3번쯤 했었으며, 내가 태어난 이후로도 광장동, 고덕동, 가락동을 포함해 세번의 이사를 걸쳐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됐고 이후에 강의 남쪽으로 건너가 2년에 한번꼴로 이사를 다니며 10년정도 있다 현재의 거주지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차피 서울에서 서울로 옮겨다닌 무난무탈한 이야기지만, 중간중간 엄마가 레퍼토리처럼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구절들이 나오는게 반가웠다. 특히 어릴 때 내가 동네 짜장면 아저씨를 보면 맨날 '짜장면 아저씨' 하고 인사하고 따라당겨서 아저씨가 하루는 공짜로 짜장면을 주셨다는 일화는 살면서 백번은 넘게 들을 이야긴데, 그 이야기를 할 때 엄마는 항상 신나보인다. 그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뭔가 주책맞게 눈물이 나올 뻔했다. 엄마의 눈은 그 얘기를 할 때 정말로 그 시절로 간 듯 반짝인다. 살림살이가 어땠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자식들이 참 이뻤나보다. 항상 집밖으로 나가 놀고싶어하던 내 누이와 밖에 나가면 또 금방 돌아오고 싶어하면서도 짜장면 아저씨는 그렇게 따라당기던 아들의 모습이 엄마의 기억 속에는 어떤 형태로 저장되어있을까. 엄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서로의 기억을 같이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엄마는 방에서 오랜만에 발견한 옛 사진들도 보여주셨다. 필름으로 찍히고 인화된 정말 말 그대로 옛 사진들. 전성기 시절(?) 엄마아빠의 모습이 정겹고 뭔가 웃기다. 미소지으며 보다가 사진에 찍혀있는 부모님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몇살은 어리다는 사실에 기분이 뭔가 멩글밍글해졌다.

IMG_0669.HEIC 부모님의 신혼 시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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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서 처음으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조카가 놀러온게 아니라면, 새 생명이 탄생했나보다. 얼마전에 햄넷을 봐서 그런가, 아기울음소리가 새삼 경이롭다. 축복이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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