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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나의 상처는 "회색"

by 세진


"됐고,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어.

그런 표현은 하지 말아야지. 비유도 참. 회색이 뭐니?"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글 쓰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13살, 나의 꿈은 "작가"였다. 그것도 "청소년 문학 소설 작가"라는 구체적인 꿈. 초등학생 시절에 소설에 푹 빠진 나는,

소설 작가가 되어서

남들에게 이러한 가치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들어간 중학교 1학년.

나의 글쓰기를 눈여겨본 담임 선생님은, 남산도서관에 있는

작가교실에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하셨다.

기초적인 틀부터 글에 대해서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당장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는 남산도서관 중학생 교실에 가장 어린 14살 학생이 되었다.

14살은 가장 적은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대부분은 중학교 2-3학년들이었다.


수업은 이론적인 수업을 듣고, 숙제로 글을 써오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숙제로 글을 써와도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되었으며,

정작 피드백받는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피드백마저도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일명 작가라고 칭하는 강사가

수업한 방식대로 글을 쓰지 않으면...

어떠한 글이든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 시절 적었던 내 단편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키워드는 회색이었다.

가장 어두운 색인 검은색과, 가장 밝은 색인 흰색을 물감으로 해서 섞으면 회색이 된다.

이처럼, 가장 어두운 감정과 가장 밝은 감정이 섞인 미묘하고 흐릿한 "회색"처럼,

그러한 청소년의 감정을 담은 소설을 적고자 했다.


그래서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회색이라는 색깔의 상징과 키워드였다.

강사는 내게 왜 회색이냐 물었고,

나는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했다. 가장 어두운 검은색과 밝은 색인

흰색을 섞은 회색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중간적인

감정을 소설 속 주인공에게 드러내려 했고,

그래서 청소년 소설 주인공의 감정과 세상은 회색이라고.


작가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 짧은 소설 몇 문장도 읽지 않고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서는 "회색"이라는 그런 듣도 보도 못한 거 이해 안 되니까 다르게 적어오라는,

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했다.


어떠한 글을 쓰든, 강사는 학생들에게 비난을 했다. 그럼에도 난 작가가 되고 싶어서 주말이면 울면서, 토하면서 남산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느 날은 고개를 돌리니 창밖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 나뭇가지에 쌓이던 하얀 눈.

그리고 눈을 보기 위해 빠르게 내려가는 학생들을 내버려두고, 나는 가장 늦게 피드백을 받고 나와서 계단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때 보이던 흩날리던 눈을 못 잊는다.


그리고서, 나는 강사가 원하는 글 형식을 습득하여 억지로 기계처럼 적었다.

강사가 원하는 방식의 글을 적을 때면 구역질이 나듯 괴로웠고,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두 번만에 내가 적은 글은

우수 글로 뽑혔고,

꾸준한 출석과 우수한 글 성적으로

나는 우수반으로 들어갈 자격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우수반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우수반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회심작으로 내놓은 "회색"과 같은 글은 적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고,

"글에 대한 비난"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아

작가라는 꿈마저 버려야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초등학생 내 인생 전체를 차지하던 소설가라는 꿈을, 나의 유일한 취미던 글쓰기마저 놓고 싶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달의 조각>이라는 에세이를 발견하게 되었고, 나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적어보는 건 어떨까? 하며

방향을 틀기로 하였다.


내가 소설에 재능이 없다면,

그러면 다른 글쓰기인 수필을 적어보면 되는 거 아닐까?


14살에서 15살로 올라가는 겨울 방학.

나는 <달의 조각> 작품을 수없이 읽고 필사하며 에세이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소설만 읽던 내가 에세이를 찾아 읽고, 작가를 만나러 찾아다니며 배웠다.


그리고 틈이 나면 일기를 적었고,

소재를 찾고 글을 적기 시작했다.


나에게 "표현"에 대해 나무라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던

강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도록,

나는 외부에 있는 글쓰기 상 어느 곳에서라도 나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어디든 넣으면 되겠지.

주제에 한정 짓지 않고 어디든 넣었다.


그리고, 여름 방학.

노래 하나를 들으며 컴퓨터

앞에서 재검토까지 약 5시간을 적었던

나의 수필 글은 대상을 받게 되었다.

청소년 부문에서, 15살의 나이로 대상을.


아직도 그때 일이 기억난다. 중학교 15살 중간고사를 공부하던 도중에, 어떤 사람에게 전화가 왔었다.

나보고 오세진 학생 아니냐고 묻던 담당자는

"대상을 수상했으면서 왜 연락을 주지 않냐"

라고 물었고,

내가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니

공모전에서 상 받은 거 모르냐고 다시 물었다.


그제야 나는 컴퓨터를 켜고

공모전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장려상도 우수상도 아닌 대상.


나는 강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길로

바로 대상을 받게 되었고,

그 길로 나는 에세이만 적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글을 적을 때면

그 강사가 나에게 했던

글쓰기에 대한 비난이 떠오른다.


나의 글이 가독성이 없다는 둥,

표현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둥.

학생에게 해야 되는 칭찬은 한 마디도

해주지 않던 그 강사의 말이.


그때, 마지막까지 듣고 있던 14살의 학생은 나만 있었다. 다른 나이대 학생들 역시 많이 그만두었다.


한 번도 칭찬해주지 않는 그 사람은 왜 학생들이 결석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매번 교실을 나섰다.


가끔, 내 글을 살펴보고 훑고,

혹은 빈 종이에 내 글을 적고 검토할 때면

여전히 그 사람이 나에게 남긴 글에 대한 비난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열정 덕분이었다.


이러한 열정이 없었다면

나는 브런치에도 도전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 사람의 말에 복수하고자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은 건 참 다행이고,

에세이라는 재능을 찾은 것도 다행이지만,

여전히 나는 10년 가까이

지난 그 말에 상처를 받아서

소설에 도전하고 싶어도 도전하지 못한다.


이런 걸 보면,

어릴 때 받은 상처의 말은 생각보다

꽤 깊은 상처로 오래가는 거 같다.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리고, 그 상처의 색은 여전히 회색이다.

검은색일정도로 어둡지는 않고,

하얀색일 정도로 밝지도 않다.


그저, 그렇게 섞인 회색의 모습이다.

나의 상처는 여전히 회색.


회색이 옅어져서 하얀색이 되어

밝아지는 그날이 오긴 하려나.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어둡지 않고 밝은 채도의

회색이라 안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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