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땅에 쏟아진 거 같은.
내가 열심히 하면 누군가는 알아봐준다.
그러니까,
그동안 내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면
그건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날 알아봐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노력을 의심치 말아야 한다.
오늘 나는 그걸 깨달았다.
오늘 고전소설을 다루는 수업 발표를 했다.
PPT 첫 발표였다.
내가 편입을 하고서 공식적으로 처음 하는 발표.
티는 안 냈지만 사실 떨렸다.
전적대에서보다 더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도 들었다.
편입생이라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논문을 읽고
수업 교재인 <<고전스캔들>>을
몇 번이나 분석하고 PPT를 만들었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
그나마 우수한 과제를 몇 개 뽑아 전시하셨다.
내 과제가 저기 있었다.
이 사람들은 A권에 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대놓고 피드백을 들었지만
사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워낙 저 교수님의 성격이 직설적으로 말하셔서 그렇기도 하고,
그냥 유머가 내 스타일이다.
중학생 때 과학 선생님과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리 속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표를 시작했다.
10분 컷을 하라고 들었던 만큼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명확하게 발표했다.
교수님이 말하셨다.
"딱 8분 9초."
다행이었다.
PPT를 잘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발표도 칭찬해주셨다.
그리고서 구석구석 PPT 설명 지적도 하셨지만,
사실 교수님의 꼬투리 잡기라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교수님의 질문에 잘 대답했다.
들어가기 전,
교수님이 그러셨다.
"발표 잘했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발표 잘했다는 말을 듣고서
확실히 기억하고 싶어서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발표 끝난 후였나, 발표 전이었나.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다른 학생에게 책을 고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와,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대화를 지켜보았다.
전적대에서도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책을 고르라고 하는 걸 구경한 적이 있다.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의 특징인 거 같다.
수업 잘 듣는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책을 선물하는 거.
그래서, 전적대에서 매번 구경만 했었고
오늘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나에게도 고르라고 하셨다.
<삼국유사>랑 <토끼전>중 고민하느라
못 고르고 있으니
<토끼전> 읽으라고 주셨다.
이걸 왜 주시지? 하면서도
너무 감사한 마음에 얼떨떨하게 받았다.
몇 명이 더 받았고,
교수님은
"4퍼센트 안에 드는 학생들이라 줬다."며,
"편애한다고 뭐라 하지 마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냥, 그 순간 <토끼전>을 받고 너무 벅차서 어떤 말도 안 나왔다.
그동안의 내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구나.
정말, 누군가는 알아봐 주는구나.
무언가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도 이런 걸 교수님께 받아보는구나.
나는 고전 소설과 고전 시, 고전 문학을 잘 몰랐다.
전적대에는 고전문학 강의가
제대로 개설되지 않아서,
내가 알고 있는 고전문학 지식은 고등학생 때 멈춰버렸었다.
그리고 이 수업을 신청하고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알고 보니, 교수님 성격이
불 같다고 유명했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을 모르는 내가 이 수업을 들으면
엄청나게 욕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걱정을 참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 교수님이
고전 문학계에서 꽤 유명하시다는 걸 알고나서는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편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전적대 내 국문학 전공 커리큘럼에서
인정된 건 현대문학밖에 없다는 점.
즉, 나는 현대문학만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
지금 편입한 학교에서는
고전문학'만' 들어야 했다.
초반에 수업 들으면서도 막막하고 무서웠다.
이미 고전문학을 많이 알고 있는
이 학생들 틈에서,
나 괜찮을까.
모르는 거 물어보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대답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 교수님한테
찍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냥, 그렇게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열심히 한 학생으로 인정받는 건 처음인 것만 같았다.
전적대에서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서 보기 좋아~ "
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도 전적대에서 편애받는 학생들을 보며
대체 얼마나 더 잘해야 되나 궁금했었다.
그렇게 책 선물을 받는 학생들을 보면서,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다.
내 노력이 부족한가. 그렇게 탓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그냥.
나를 알아봐 주는 곳이 따로 있다는 것을.
오늘 받은 <토끼전>이 왜 이렇게 울컥하는지.
연속 수업은 다른 고전문학 수업이었다.
그런데, 초반까지 집중을 못 하고
받은 <토끼전> 표지만 매만졌다.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수업을 들었다.
다른 수업 교수님도 날 기억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받은 책을 보며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 노력과 능력을
알아봐 준다는 건
굉장히 기쁜 일이구나.
"직설적으로 발표에 대해서 욕만 듣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며 몇 번이나 연습하던
내 모습이 생각 나서였을까.
아니면,
편입생이라고 무시받지 말자고 했던
내 마음속 여린
다짐이 생각나서였을까.
그것도 아니었다면,
전적대에서 인정받지 못해 서러웠던 것이
터진 걸까.
어떤 것인지 알고 싶지 않다.
그냥, 저 <토끼전>을 보며
믿어보려고 한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어떻게든 존재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