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은 시설이 아니라 권리다!!

by 욕망의 화신 경희

존엄은 시설이 아니라 권리다

죄책감이 아니라 국가책임을 묻는다

장애인도 시민이다!

우리는 감옥 같은 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외친다ᆢ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살겠다고 말한다.

존엄은 배려가 아니라 권리라고 투쟁한다.

그런데 싸우다 보니 또 다른 현실이 보인다.

한국사회는 빠르게 늙어간다.

젊은 시절에는 산업노동자로 살았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버텼다.

몸을 갈아 국가의 성장을 떠받쳤다.

그러나 노환이 오고 치매가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ᆢ내가 살던 집에서ᆢ

내 침대에서 생을 마감할 권리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ᆢ

낯선 요양병원 낯선 요양원 익숙함이 지워진 공간ᆢ 의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삶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시간을 연장하다가 사라진다.

이것이 고령사회의 민낯이다.

우리 엄마는 아흔을 넘기셨다.

중증 치매 진단을 받았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았고 하루 세 시간 요양보호사가 왔다.

그것이 국가가 책임진 전부였다.

남은 시간은 자식들의 몫이었다.

돌아가며 돌보다가 결국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경미했고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하루 세 시간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우리는 결국 요양원으로 모셨다.

이 선택은 불효가 아니다.

구조의 한계다. 그런데 왜 우리는 죄책감을 배우는가.

왜 부모를 시설에 모시며 스스로를 죄인처럼 여기는가ᆢ

국가는 돌봄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족 책임을 말한다. 효를 말한다. 사랑을 시험한다. 이건 선택이 아니다. 강요다.

만약 하루 여덟 시간만이라도 돌봄이 보장되었다면 어땠을까.

중앙정부가 다섯 시간을 책임지고

지방정부가 조례와 예산으로 세 시간을 채웠다면 어땠을까.

노인들도 장애인들도 가난한 사람들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존엄하게 늙고 존엄하게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존엄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예산이며 정책이다!! 우선순위다.

국가는 어디에 돈을 쓰는가ᆢ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 준비에 쓴다.

지구를 죽이는 토건 개발에 쓴다.

사람이 아니라 체제 유지에 쏟아붓는다.

그리고 돌봄은 개인의 몫이라고 말한다.

쓸모가 다하면 스스로 감당하라고 한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왜 노인 당사자와 가족들은 분노 대신 죄책감을 선택하는가? 왜 요구 대신 체념을 배우는가.

돌봄은 복지가 아니다.

권리다!!

노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시민이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살 권리

집에서 늙을 권리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

이것은 가족의 효심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가 책임의 문제다.

요구해야 한다!!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라고.

예산을 생명으로 돌리라고.

지역사회 기반 돌봄을 확대하라고.

요구가 거부된다면 싸워야 한다.

탈시설은 장애인만의 의제가 아니다.

고령사회 전체의 미래다.

오늘 요양원에 들어간 사람이

내일의 나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구조의 피해자다.

그리고 동시에 싸울 수 있는 시민이다.

존엄은 기다려서 오지 않는다.

존엄은 요구하고 쟁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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