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을까?
완벽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가능할까? 계약서는 계약의 내용을 언어의 형태로 담는 것이고, 계약은 당사자가 지향하는 목적을 추상적인 법개념으로 담는 것이다. 당사자의 목적이 불분명하다면 좋은 계약관계를 구성하기 어렵고, 계약관계가 불분명하다면 좋은 계약서를 작성하기 어렵다. 반대로 당사자의 목적이 명확하고 선명하다면, 좋은 계약관계를 구성하기 쉽고, 좋은 계약서를 작성하기 쉽다. 그런데 만약 좋은 계약관계를 구성할 수 있다면, 이를 기초로 완벽한 계약관계를 구성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완벽한 계약관계를 마련했다면, 이를 바탕으로 완벽한 계약서를 작성해낼 수 있을까?
계약서를 작성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작성한 계약서의 결함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라면 오류 없는 법문서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아무리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이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완벽한 계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완벽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에 기초한 계약이론에 따르면, 계약 당사자는 모든 미래의 상황을 포괄하는 완전한 계약을 사전에(ex ante) 마련할 수 없으므로 모든 계약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이러한 불완전성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는, "미래의 조건에 대한 예측의 불가능성(unforeseen contingencies), 모든 조건을 포괄하는 계약을 준비하고 작성하는데 드는 엄청나게 높은 비용, 전혀 모호함이 없는 계약을 작성하기 어렵게 만드는 언어의 자연적 한계, 그리고 미래의 행위에 대한 정보의 부족" 등이 있다(Williamson, Oliver E., “Transaction Cost Economics.” In R. Schmalensee and R. Willig eds., Handbook of Industrial Organization. Vol. 1. Elsevier Science Publishers B.V., 1989 참조, 문돈, “거래비용이론, 신제도주의, 그리고 제도의 변화:GATT에서 WTO로의 분쟁해결제도의 변화”, 한국사회과학 제24권 제2호,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2002, pp.100-101에서 재인용).
라플라스는 1814년 그의 에세이에서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과거와 현재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어느 법조인이, 의뢰인을 안심시키기 위한 과장이 아니라 진정으로 완벽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음을 믿고 주장한다면, 버그가 전혀 없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다고 자신하는 개발자만큼이나 위험을 충분히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는지 의심해야 할 것이다. 무오류성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계약서를 보완하고 수정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벼이 여기게 하는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귀결된다. 운이 좋지 않다면 이로 인하여 언젠가는 치명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아무런 과실이 없더라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운전자가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여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속도를 줄여 방어운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운전실력을 비웃지 않는다. 유능한 전문가라면 오히려 완벽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계약서 작성 시 예측하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보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률관계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