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tabong Jan 03. 2024

돈으로 사는 스승이면 고를 수도 있어야지


주짓수 수련 5개월 차. 화이트벨트 1그랄. 도장을 옮기기로 했다. 


내가 겪은 모든 예체능은 사제 관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물론 일반적인 학교나 입시학원들에도 사제관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예체능의 사제관계는 조금 이상하다. 내가 이루고 싶은 어떤 능력을 몸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들은 다소 유교적으로 '모셔진다.' 입시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미성년자가 주인 학생들은 현직에 종사하거나 혹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나온 선생을 모시고 따른다. 이것은 학생 본인이 직접 번 돈으로 학원비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성인이 예체능을 배우는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직업이 있고, 단지 취미나 건강을 위해 시작한 예체능에서는 조금 느슨한 사제관계가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조금 정 없게 말하자면 내가 돈으로 산 스승이니까. 


5개월 동안 다닌 도장에는 유색 벨트인 여자분이 있었다. 그는 직업이 따로 있었으며 퇴근을 하고 도장에 나왔다. 평일에는 신규 관원의 상담과 체험 수업을 진행했고, 주말에는 키즈부 수업을 운영했다. 화장실이 더러우면 화장실 청소를 했고, 수업이 끝나면 청소기를 돌렸다. 체험 수업 때 쓰인 도복을 코인 빨래방에 들고 가서 세탁해 오기도 했다. 아, 투잡을 하는구나. 너무 힘들겠다. 그래도 주짓수를 정말 좋아하나 보네. 그렇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고 나도 별 의심 없이 5개월간 도장을 다녔다.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그는 무페이로 저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지도자는 좋은 사람 같았다. 나에게 친절했고, 주짓수를 잘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이 여러 가지 감정과 뒤엉켜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주짓수를 영업하고 이 도장으로 데리고 온 언니가 나가자. 하고 말했다. 언니를 따르기로 했다. 잘 모르겠을 땐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 말을 들으면 대충 맞게 돼있으므로. 우리는 이 도장을 나가기 전에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당사자와 다른 유색 벨트에게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이상하다고 했다. 처음엔 설득하려 했지만 설득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상한 지점은 커져만 갔다. 그들에게 지도자는 선생 그 이상의 어떤 존재였다. 마치... 사이비 교주와 신자들 같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지도자에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주말이 끝나갈 무렵 나와 언니 그리고 내가 데려온 친구에게까지 같은 문자가 왔다. 도장을 나가달라는 문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도장을 나왔다. 아니 쫓겨났다. 문자에는 '흰 띠 때는 그럴 수 있다' 라는 말이 있었다. 뭐가... 그럴 수 있다는 거지? 유색 벨트가 되면 무급 노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인가? 아니 더 알고 싶지 않았다.


노동을 하면 돈을 받는다. 그 돈에는 세금이 매겨져 있고, 그 세금으로 이 세계가 굴러간다. 그가 하는 행위는 노동 착취이며 탈세이다. 이 단순한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이 주짓수의 세계에서 어떤 권위가 있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냥 사기꾼 나부랭이로 보일뿐이었다. 


괴로웠다. 하지만 주짓수가 싫어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다른 도장의 체험 수업을 다니기로 했다. 2주 동안 총 7곳의 도장을 갔다. 어쩌면 몸을 혹사시켜서 더 이상의 생각을 그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좋아했던 도장이, 도장 사람들이, 지도자가 미웠다. 어떤 도장을 가도 그보다 깨끗했고 수업이 디테일했으며 무엇보다 무급 노동자가 없었다. 


2024년 1월 2일. 새 도장에 등록했다. 고르고 고른 도장이지만 한편으로는 헬스장처럼 생각하자는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스승에게 벨트를 승급 받는 주짓수의 특성상 한 도장을 쭉 다니는 것이 일종의 룰이지만, 그깟 승급, 그깟 유색 벨트 때문에 눈 가리고 아웅하며 살고 싶진 않다. 무슨 취미생활에 이렇게까지 비장하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의 글을 인용하며 오늘 글을 마친다. 


'여러분,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인간이길 포기하지 마십시오.'




+)

다 쓰고 나니 너무 비장한 것 같아 지도자의 파렴치함을 덧붙인다. 도장을 그만두고 일주일 후 지도자에게 협박을 빙자한 문자를 받았다. 구구절절하고 지저분한 다른 이유들을 덮어둔 채, 노동착취의 부적절함만 강조해 글을 올린다. 이상한 사람은 한 쪽으로만 이상하지 않다. 무엇이든 낌새가 이상하다면 빨리 다른 도장을 알아보라 말하고 싶다. 세상은 넓고 주짓수 도장은 차고 넘친다.

작가의 이전글 주짓수요? 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