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얄개 ④ 삭막한 학교가 울긋불긋해졌던 며칠

by 강희준


image.png

<응답하라 1972> 고2 때 학교 강당에서 추계 고교농구대회가 열렸습니다. 장충체육관이 수리 중이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여학생 응원부대가 들이닥쳤습니다. 교정 여기저기 꼬마 숙녀들이 거닐며 삭막했던 남학교는 울긋불긋해졌습니다.


꿈인가? 그때 정말 살만했습니다. 파릇파릇 어린 나이에도 남녀는 어울려야 살만한 세상이란 걸 모르는 친구는 없었죠? 고교 3년 동안 살만했던 시절은 딱 그 며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옥외 농구장을 쓰던 우리는 한 명의 농구 스타에게 폭 빠졌습니다. M여고 3번, 얼굴도 짱 예쁜데 실력이 월등했습니다.


꽁지머리 팔랑팔랑, 코트 가운데서 팀을 지휘하던 꼬마 선수에게 우리는 꽂혔습니다. 나중에 그 선수는 세계 선수권대회에 한국팀 주장으로 나가 팀은 준우승, 본인은 세계 베스트 five에 들었던 선수로, 올림픽 금메달보다 높이 올라간 선수로 알고 있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던 나는 응원석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놔 오늘 쟤네 집까지 간다.”

친구들은 나를 말렸습니다.

“가봤자 미역국이니 그냥 농구나 하자.”

나는 무슨 소리냐고 더 크게 질렀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지.”

짜식들이 말리려면 쎄게 말렸어야지. 입으론 말리면서 손으론 등을 떠민 괘씸한 녀석들을 교정에 두고, 나는 전쟁터로 가듯 나섰습니다.


체육관 앞에서 기다림은 길었습니다. 어느새 저는 참을성 많은 학생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아마 공부에 그런 인내를 보였으면 지금 이러고 살지는 않겠죠? 문제는 스타 선수에 예쁘기까지 한, 그래서 콧대가 매우 높은 상대를 찍었다는 것. 이제까지 평생을 돌아봐도 한국 농구계에 그런 미인은 전무후무, 여기서 ‘후무’에 방점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방점이 찐해질까 하고.


드디어 여고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 그런데 유니폼을 벗고 교복에 커다란 운동 가방 멘 덩치들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헷갈린 틈바구니에서도 미모 때문에 금방 표 났던 그녀.


코트에서 뛰어다닐 때는 조그맣고 예뻤던 선수가 엄청 크게 뻥튀기된 기분. 나중에 안 거지만 실제는 나보다 작은 173cm였는데 훨씬 더 커 보였어요. 누나 포스, 글래머, 코끼리... 뭐 이런 단어들이 맴돌았음.


어휴 이걸 쪼조차자가야하나?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쫓아갔습니다. 어쨌든 삼삼오오 교문을 나섰는데 혼자 남을 때까지 가야 하잖아요. 서부역을 지나고 염천교를 건너 서울역까지. 그녀는 탄탄하고 커다란 히프로 씰룩 쌜룩 하나 둘 셋, 태릉인이었던 나도 탄력 궁둥이로 하나 둘 셋.


그런데 여자애들은 뭔 얘기가 그리 많은지 조잘조잘 재잘재잘. 오늘 게임도 진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륵 꼬르륵. 빨리 혼자가 되어야 하는데 ‘혹시 버스까지 같이 타면 어쩌나, 저 선수 혼자 남으면 무슨 말을 어떻게 걸까?’

’ 오빠 하고 싶어서 따라왔는데.‘

’ 얘, 동갑끼리 오빠는 무슨 오빠니?‘

뭐 이 정도 나와 준다면 오케바린데. 별생각을 다 하며 주접을 끓이다 보니 키 큰 애가 가버렸고, 드디어 아담 사이즈였지만 모델같이 뻥 튀겨져 버린 우리 선수, 정류장에 혼자 남다.

“아싸 야로 돌격이다.”

작가의 이전글고교얄개 ③ 보고 싶은 걸레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