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나는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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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cky boy

전역 후, 나는 나홀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자유롭지 못했던 하루를 보내던 중, 사회에 나가면 꼭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가 떠올랐다. 바로 혼자 제주도 가는 일이었다. 꼭 한라산을 올라,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그 풍경을 보고 싶었다.

전역 2달 전이 가장 시간이 안 가던 시기였지만, 자격증 준비와 사회에 나가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여행 전날, 잠이 오지 않아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하고, 한 손에는 『스토너』를 챙겨 집을 나섰다. 나는 여행이나 장거리 일정이 있을 때면 꼭 책을 챙긴다. 만약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거나 일정에 여유가 생기면,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책을 읽으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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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숙소로 향했다. 렌드를 하지 않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다 보니,

주변 풍경이나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숙소 이름은 '서점숙소' 군대에 있을 때 '휴머니스트'라고 공군인들끼리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서 한 장병이 추천해준 숙소다.

사람들끼리 책을 읽은 것으로 필사를 하고, 서로 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바로 예약했다.

숙소에 들어서니 시설도 너무 좋고, 많은 책들이 서재에 있는 것을 보니 내 취향에 딱 맞는 곳이었다.

20시에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각자 책을 40분 정도 읽고 나서 약 3시간 2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제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책을 서로 읽기로 했는데, 나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고르기로 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사랑'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내 삶을 보는 시선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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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 연애를 하고 있었다. 『달과 6펜스』에서의 션 스트릭랜드는 자유와 예술을 위해서 가족이나 사회적 규범을 넘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며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대가로 얻게 된 고독과 고통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럼에도 그는 후회를 하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에도 그는 그 어떤 힘든 기색도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고난과 역경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책을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이 시기에 나는 사회적 성공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내 목표와 충돌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인간관계를 최대한 끊었다. 그 결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던 것 같다. 6펜스를 줍느라 달을 보지 못했던 '나'에게 션 스트릭랜드는 많은 영감을 주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을 때,

'뫼르소'라는 인물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 같았다. 하나의 알에서 깨고 나왔던 그 순간처럼.


이 책을 계속 읽어도, 그때의 결심이 옳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정답은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셰익스피어, 니체, 사르트르 등은 사랑을 창조적 힘이자 자기초월의 과정으로 보았다. 즉, 사랑은 인간 존재의 성장과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나 역시 연애 초기에는 사랑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고, 좋은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느꼈다. 하지만 마음이 맞지 않음에도 '죄책감'이라는 무게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때,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과 관련된 책으로 이 책을 꼽았고, 이 책을 통해 내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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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사장님이 대화를 너무 잘 이끌어 주셨고

다른 게스트 분들도 서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이야기 해서 더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각자 내면에 있던 고민이나 생각을 털고

대화를 나눈다는 게 나에겐 너무 값진 경험이였다.



아침에는 일어나서 숙소 주변 바닷가에서 런닝을 하고, 숙소에서 만난 형 한 분이 밥을 사주신다고 해서 함께 먹고 헤어졌다. (감사합니다.. ㅠㅠ)

이 숙소는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싶다. 다음에 제주도를 간다면, 제주도를 가기 위한 경로가 아니라 '서점 숙소'를 방문하기 위해 제주도를 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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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