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P

나에게 상처받는 사람들

by 라리

누군가를 깊게 알아보기엔 세상살이가 고단하다. 그래서 대충이라도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선판단하고 싶어서일까 최근 들어 초면에 mbti를 물어보는 것이 익숙한 대화 주제가 되었다. 라떼는 혈액형이였는데 시대가 좋아졌다며 대화에 끼어볼까 싶어 검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I였다가 E였다가 P였다가 J였다가 할때마다 번번히 유형은 바뀌었다. 아 이 검사는 나랑은 맞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누군가가 물어보면 말을 흐리며 '나는 다중인격인가봐' 또는 '나는 중도의 사람인가봐' 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다 나온게 타인이 해주는 mbti였다. 타인이 보는 나라니....! 사회 생활을 하는 현대인이라면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친한 친구들 몇에게 부탁하여 나온 것은 estp. 4명이 다 같은 결과가 나온걸 보고 약간의 신뢰감이 생기며 이제 estp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게 되었다. 이게 문제의 발생인지도 모르고. 나의 mbti를 알게 된 내 주변인들이 어쩐지 공감을 안해주드라. 어쩐지 이성적이드라. 어쩐지 현실적이드라 면서 나를 규정짓기 시작했다. estp의 무심함을 꼬집는 영상이나 글이 있으면 나에게 어김없이 '역시' 하면서 보내곤 했다. 그걸 보면서 나라고? 내가 저래? 나랑 같다고 생각해서 보내는 거지? 라면서 수많은 ????를 가졌던것 같다. 자아정체감 면에서 꽤 확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상처받은 지인들의 수많은 태그들을 보며 꽤나 머쓱의 기간을 한동안 보냈었다. 물론 약간의 장점도 있었다. 이래서 너가 무심했구나 라며 나를 이해해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가 자기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든지, 왜 위로는 안해주고 답을 정해주나 화가 났는데 이유가 있었다든지.

학교에서도 학생이 아파서 찾아오면 보건실부터 가라고 말하는 나에게 샘은 영혼이 없다. 샘은 힘든데 위로를 안해준다. 샘은 너무하다. 라는 말에서 이제는 '샘 T예요?' 라는 한문장으로 간결하게 바뀌게 되었다. '맞아 나 T야' 라고 답하면 납득하듯이 가는 학생들을 보며 mbti 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사주와 타로 카드와 신년 운세에 추가되어 지인들과 하나의 스몰톡이 생겼다. 물론 안다. 과학적인 타당성도, 환경의 변화에 대한 고려도, 역할마다 가지게 되는 복잡성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걸. 하지만 누군가를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mbti는 심리테스트 이상의 매력이 있다고 느껴진다. mbti를 주제로 수많은 문답과 상황극과 여러 파생된 상품들만 봐도 얼마나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가. 사람의 성격을 당연히 16가지로 딱 구분할 순 없겠지만 서로를 웃으며 이해해보고자 하는 수단이 생겼다는 건 고단한 삶에서 소소한 재미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sns의 삭제와 소통 부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