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동치는 오로라
오늘, 세계는 숨을 죽였다.
평범한 화요일 같았지만, 대기 중에는 미묘한 파동이 일렁이고 있었다.
모든 존재의 의지가 한 곳으로 모이는 날, 바로 ‘현실 투표일’이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종이 투표용지에 이름을 적지 않았다.
투표소는 도시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수정 구조물, ‘의지 변환기’였다.
차가운 금속과 영롱한 빛으로 이루어진 그 안으로 들어서면, 투표자의 의식은 현실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에너지와 연결되었다.
두 명의 후보가 있었다.
한 명은 ‘질서의 수호자’라 불리는 존재, 늘 푸른색 제복을 입고 차분한 표정을 한 그의 이름은 에이온이었다. 그는 세상의 예측 불가능성을 잠재우고 안정적인 주파수를 유지하려 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기계처럼 정돈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투표 에너지는 땅속 깊이 박힌 거대한 결정체처럼 느껴졌다.
견고하고 흔들림 없었다.
다른 한 명은 ‘흐름의 예언자’라고 불렸다.
붉은색 망토를 휘날리는 그의 이름은 제니스. 그는 변화와 가능성을 옹호했다.
세상은 늘 새롭게 흘러야 하며,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외쳤다.
그의 지지자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험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투표 에너지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폭포수 같았다.
격렬하고 예측 불가능했다.
나는 흐릿한 안개가 낀 길을 걸어 의지 변환기 앞으로 다가섰다.
건물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각자의 얼굴에는 기대와 불안, 그리고 깊은 사색의 그림자가 비쳤다.
그들이 내뿜는 미세한 에너지 파동이 느껴졌다.
어떤 이는 푸른색으로, 어떤 이는 붉은색으로.
두 가지 색이 뒤섞여 도시 전체를 감싸는 오로라를 만들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의지 변환기 안으로 들어섰다.
투명한 바닥에 발을 디디자 부드러운 진동이 온몸을 감쌌다.
눈앞에는 두 개의 상징이 떠올랐다.
푸른색 정육면체와 붉은색 나선. 에이온과 제니스의 상징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손을 뻗었다.
내 의식의 에너지가 손끝에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손짓 하나로 내일의 하늘 색깔이, 중력의 미세한 변화가, 세상의 이야기가 바뀔 수도 있었다.
에이온의 질서는 안정적이지만 정체될 위험이 있었다.
제니스의 흐름은 흥미롭지만 혼돈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할까.
내 안에서 푸른색과 붉은색 에너지가 충돌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읽었던 고전 판타지 소설 속 마법사들의 대결처럼, 나의 작은 의지가 이 거대한 에너지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손을 움직였다.
내 에너지가 선택된 상징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가 비워지고, 변환기 안의 에너지가 나에게로 역류했다.
마치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감각이었다. 푸른색 상징을 택했는지, 붉은색 상징을 택했는지, 그것은 나만의 비밀로 남겨두었다.
투표를 마치고 변환기 밖으로 나왔을 때, 오로라는 더욱 선명해져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뿐이었다.
모든 의지 변환기의 에너지가 모여 최종적인 현실 주파수를 결정할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가의 가로등 빛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저녁 하늘의 구름 모양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세상이 이미 새로운 주파수에 맞춰 조율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나의 감각이 예민해진 걸까?
오늘 밤,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잠들고 내일 아침, 어떤 색깔의 태양이 떠오를까.
나의 선택, 그리고 수많은 다른 존재들의 선택이 만들어낼 새로운 현실을 기다리며, 나는 창밖의 요동치는 오로라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