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사회 속에서 나의 본질을 찾는 태도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틀리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실수는 곧 실패로 이어지고, 실패는 곧 낙오로 이어진다는 인식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도전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도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실패를 피하려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시도하지 않는 삶은 결국 아무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사회는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개인은 그 구조 속에서 점점 작아지고, 시스템 위에 군림하는 전문가 집단과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취업을 위해 수많은 자격증과 시험, 관문이 생겨나고, 청년들은 산을 오르기도 전에 그 높이에 압도되어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반복된 좌절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약화시키고,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에 맞춘 부품이 되기를 강요받게 만든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메타인지는 단순한 인지 능력이 아니라 이 시대에 필요한 중요한 도구가 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의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만이 타인이 설계해 놓은 길에 무작정 끌려가지 않는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억지로 걷는 길은 결국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 길에는 스스로의 의지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반복은 언젠가 멈출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의 당위성을 찾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이를 모험에 비유해 보면, 당위성은 내가 떠나기 전에 지도를 만드는 일과 같다. 반면 실행은 실제로 가시덤불을 헤치며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다. 지도를 완벽하게 만들겠다는 집착이 커질수록 우리는 정작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지쳐버릴 수 있다. 하지만 당위성이 분명할 때, 우리는 모험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딜 이유를 찾게 된다.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당위성과 실행이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과정이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과 유행,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불안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설령 사회적 보상이 적더라도 스스로의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보상이 따르지 않는 일에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돈을 사회적 지위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사회의 지배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의 주권을 가진 사람은 보상의 기준을 다양하게 설정한다. 성장의 기쁨, 스스로를 증명하는 경험, 몰입에서 오는 희열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당장의 경제적 보상이 적더라도 자신의 고유한 방향을 지켜 나가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드러내게 된다.
대학교에서 영화/음악/철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의 말이 떠오른다. 보편성이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예술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사회 시스템은 우리를 미래의 성공과 보상에 매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일상의 아름다움은 지금 이 순간, 여기라는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래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되는지도 모른다. 가장 개인적인 본질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그 끝에서 결국 인류가 공통으로 느끼는 보편성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