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등떠밀려 정든 초등학교를 떠나다
앞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베를린에서는 경우에 따라 4학년을 마치고 상급학교로 진학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2학년 정도부터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외부적인 조건(성적 등)보다도 아이 스스로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상급학교(김나지움)에 진학하려는 동기가 있어야 하고, 최소한 학업 과정에 대해서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숙제나 교과서, 준비물 챙기기 등 기본적인 활동은 부모가 챙기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어떤 학교에 지원하고자 하는지도 정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김나지움에서 열리는 오픈데이(Tag der offenen Tür)에 참여하면 결정하는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픈데이는 학교마다 일정이 다르며, 대부분의 학교는 1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 (12-1월) 열리지만, 경우에 따라 새 학기가 시작한 지 한두 달 후(10-11월)나 학기가 끝난 후(6-7월)에 열리기도 한다. 미리 오픈데이에 참여해 아이와 함께 학교 분위기를 둘러보고, 학교마다 입시 전형이 조금씩 다르므로 그에 맞춰 준비하는 것이 좋다. 2학년 때 이렇게 입시 과정에 대해 알아두고 3학년 1학기에는 본격적으로 준비하며 학기가 끝나면 곧바로 원서를 작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첫째가 한창 이러한 준비를 해야 할 무렵 코로나가 터져 모든 방문과 외부 행사가 중단되었다. 그래서 첫째는 온라인으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해야 했다. 실제로 가서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개관은 얻을 수 있었다. 재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편집한 학교 소개 영상을 시작으로, 각 과목 선생님이 나와서 소개해 주었고, 실험실이나 음악실 같은 특수 목적의 교실도 소개되었다. 또한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과 후 활동들도 소개되었는데, 체스, 레고, 꿀벌 체험, 농구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학교 소개는 꽤 인상적이었지만 첫째 아이에게는 크게 와닿는 것 같지가 않았다. 딱히 나쁜 인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또 크게 매력을 느끼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진행되어서 더 그런것 같기도 했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어찌된 일인지, 같은 반 학생 중에서 김나지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우리 아들과 다른 여학생 한 명 이외에 희망자가 없었다. 그 여학생은 교우 관계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어 그 해결책으로 진학을 선택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들이 다들 매우 여유로운 분들이서서 그런지 아직은 애들이 더 뛰어 놀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우리가 사는 동네가 베를린 외곽인 탓인지 그런 분위기가 더 강한 것 같았다. 다른 동네에 사는 아이들 친구 엄마 얘기를 들으면 다들 좋은 김나지움에 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나만 괜히 유난을 떠는 극성 아줌마 같았다.
어쨌든, 그래서 첫째는 사실 김나지움 진학에 대한 생각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모두 초등학교에 머무르니, 자기만 외딴 세계로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육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학에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첫째가 수학 쪽으로 약간의 재능을 보였고, 그에 비해 초등학교 수업은 너무 느슨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따로 공부시키거나(필자가 수학 과외교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사교육을 시킬 만큼 노력이나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공교육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배우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배움의 의지가 굉장히 강한 아이였는데, 부모님께 배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집안형편도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기에 뭘 더 배우는 친구들을 보면 한없이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빨간펜이나 윤선생 영어를 하는 애들은 다 부잣집 애들 처럼 보였었다. 내 학창시절에 약간 아쉬움이 남았던 부분을 아이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모로 딱히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들에게 김나지움에 진학하면 “닌텐도”를 사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단순한 우리 아들은 김나지움에 가면 닌텐도를 받을 수 있다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받고 김나지움 진학 준비에 동참하게 되었다. 12월 경에는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진학 의사를 밝히고 추천서를 받았다. 1월에는 추천서와 함께 3학년 1학기 성적표를 첨부하여 서류를 제출했고, 2주 후에 수학 입학시험을 치렀다. 최종 합격은 서류와 시험 결과를 합산하여 한 달 쯤 후에 발표되었다. 다행히 김나지움에 합격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렇게 첫째는 엄마에게 등 떠밀려 정든 초등학교를 떠나 김나지움으로 진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