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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빈 Jun 12. 2023

스물 한 살 휴학생이자 스타트업 디자이너

무엇이 날 이 곳에 남게 만들었냐 묻는다면 단연, 여전히 '사람들'이다.

나는 재수해서 들어간 대학을 고작 1년 다니고 휴학원을 제출했다.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단지 쉬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잠도 안 자고 과제에 시달리던 디자인학과 새내기 생활을 마치고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인턴으로 일하기로 했던 그 스타트업에서 나는 2년째 함께하는 중이다. 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대학생의 신분과 대학교 생활을 한편에 접어두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는 회사원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재수까지 해서 들어간 대학을 그만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묻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회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 수업에서였다. 여러 스타트업 중 한곳을 골라 어떤 회사이고 어떤 프로덕트를 만들고 있는지 정리하고 무엇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면 좋을지 제안해야 하는, 팀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리서치 수업이었다. 과의 대표였던 나에게 교수님은 그중 다른 학생들이 선택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선택지를 추천해 주셨는데 그곳이 바로 내가 일하고 있는 지금의 회사였다. 다른 곳에 비해 제품의 방향이나 디자인이 뚜렷하게 잡혀있어 선뜻 무엇을 제안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에서 모두가 기피했다. 교수님의 권유에 나는 오기를 가지고 동기 중 가장 성실하고 꼼꼼한 두 명을 찾아 모았다.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였기에 나와 동기들을 몇 개월을 잠도 못 자고 매주 100장이 넘는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그렇게 모든 내용을 정리해 회사 측에 우리의 제안과 아이디어를 직접 피칭하는 강의의 마지막 날이었다. 당시 해외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이동 중이셨던 지금 우리 회사의 대표님이 온라인으로 들어오셨고, 우리의 발표를 들으시더니 빠른 시일 내에 꼭 회사로 초대하고 싶다 하셨다. 예의 상하는 빈말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며칠 뒤 정말 이메일이 와 있었다. 겨울방학 두 달간 디자인팀 인턴으로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사실 메일을 처음 받고 든 생각은 ‘두 달씩이나?’였다. 디자인팀에서 제안해 주신 포지션이 UX리서처였는데 사실 난 편집 디자인을 주로 해왔기도 했고, 두 달이면 다시 개강이었는데 꼬박 1년을 잠을 설치며 과제에만 매달려왔던 나에겐 쉼이 급하기도 했다. 큰 기회라고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제안해 주셨으니 회사 생활이나 경험해 보자는 마음으로 출근한 사무실에서 첫날,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곳에서 두 달은 너무나도 짧다.’


30명 정도되는 인원의 소규모 스타트업, 디자인팀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제품 사용자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엇이 날 이곳에 남게 만들었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 여전히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입사 첫날, 회사에는 눈에 보일 듯한 열정으로 타오르는 사람들만이 존재했다. 이렇게 온도가 뜨거운 곳은 처음이었다. 시끄러웠고, 정신없었고, 무언가 많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모두가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며 매우 신이 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모든 스타트업들은 다 이런가?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냥 우리 회사가 특이하고도 이상적이었다. 입사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즘, 나는 이미 대학교 홈페이지에서 휴학원 제출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달을 나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시간으로서 치열하고 간절하게 보냈다. 사실 이 사람들 틈에서 ‘열심히 하지 않기’란 더 어려웠다. 제품을 한 아이 키워내듯 진심을 다하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과 기세가 있는, 마냥 진지하지만은 않은 이들과 함께하며 나 또한 제품을 훌륭하고 건강한 아이로 길러내어 세상 속에 가치를 내보이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나로 성장하겠다 다짐했다. 두 달의 시간이 거의 다 지났을 때, 디자인팀 보스(애칭)께서 나의 의견을 물어보셨다. 여행이 가고 싶거나 쉼이 필요하면 몇 주가 되어도 좋으니 다녀오라고. 그 후에 내가 괜찮다면 디자인팀과 함께 해도 좋다고. 그게 벌써 2년 전 회사 앞 카페에 앉아 나누었던 이야기다. 동계 인턴의 선택을 지지하는 회사.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나에게 쉽게 쥐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마음이 뭉클했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 팀과 함께하는 한, 칼을 뽑은 이상 뭐라도 썰겠다고. 성공에 도모하겠다고.


그리고 나는 다시 증명한다. 이젠 나 자신이 아닌 제품의 성공을 말이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혹은 증명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내가 가진 시간, 오래도록 기대했던 대학교 생활 그리고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그 가치는 이미 우리 팀과 '함께 한다’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기에 그 무엇도 아깝지 않다.


난 팀 하나만 보고 학교를 관두었다. 당시 21살이었고 2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나의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꾸고 있는 꿈은 곧 현실이 될 거다. 낮에도 밤에도 꿈을 꾸며 잠들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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