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진 않지만, 나다운 시작
비즈니스캔버스에서의 4년간의 여정을 마무리지었다. 첫 회사였고 첫 퇴사이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이 비어있는 내가, 어리둥절하게 시작한 이 여정 속에서 나는 속이 꽉찬, 혹은 무엇으로 어떻게 나를 채워나가야할지를 깨달았다. 삶의 뼈대를 이루는 무언가가 생겨났다. 그리고 모두가 타고있던 열차에서 나는 나의 길을 가기 위해 홀로 그 열차에서 내리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주 무모하고 대담한 선택을 저질렀다는걸 퇴사하고 지금 보름쯤 지나서야 슬슬 실감이 난다.
내 인생 20대의 (거의) 절반을 나의 팀과 함께했다. 사람들 덕분에 배웠고, 사람들 덕분에 자랐다. 사람이 전부라는 그 진부했던 말이 진실이라는걸 여실히 느낀다. 입사할 때쯤 이런 글을 적었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그 가치는 이미 우리 팀과 '함께 한다’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기에 그 무엇도 아깝지 않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꾸고 있는 꿈은 곧 현실이 될 거다. 낮에도 밤에도 꿈을 꾸며 잠들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웅장했던 이 문장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게 되었고, 그들은 여전히 밤을 지나 아침이 될 때까지 깨어 있는 채로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함께했기에 어떤 것도 아깝지 않았다는 마음도 여전하다. 그래서 퇴사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망설이게 했던 것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도 바로 사람들이었다.
내가 여정에서의 하차를 결정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이루고싶은 꿈이 생겼다는 점이다. 자유롭고 싶다. 시간, 환경 그리고 자금, 그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운 삶.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느꼈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부터가 시작이였다. 그 울타리 안에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온전히 나의 일을 수단으로 그 자유를 구축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남의 일처럼 여겨졌다는건 아니지만 온전히 내가 이루고 싶은 것, 내가 해내고 싶은 것과는 어딘가 감정의 농도가 달랐다. 첫번째로 꿈이 생겼고, 두 번째로, 내가 아끼는 이 사람들은 이미 내 인생의 일부가 되어 더 긴 여정을 함께할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드니 판단이 섰다. 퇴사를 해야겠구나.
해리포터의 1편과도 같았던, 내 20대의 첫 챕터 촬영은 끝이 났고, 어떻게 기억할지 잘 편집을 하는 시간을 꽤 오래 보내야할 듯 하다. 어떤 장면들과 순간들을 하이라이트로 남겨둘지, 마음에 박힌 명대사들이 후속편에서 주인공의 어떤 선택들로 이어지게 될지 말이다. 해리는 마법사라는걸 깨달은 정도의 판타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지, 어떤 일들을 해보고 싶은지는 알았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이 해리포터 비유가 꽤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거냐고 묻는다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차근차근 풀어가보려고 한다. 제품을 만들어 가치를 가져다주는 일도, 무언가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과도 같은 브랜딩도, 무언가 계속 창작해내는 모든 일들이 행복하고 즐겁다. 한꺼번에 할 순 없으니 하나씩 벽돌을 쌓듯, 어디로 향해가지는지 모로는 그 길의 담벼락을 쌓아가 보려 한다. 내가 이런 내리막과 늪에도 빠져보고, 이런 오르막과 푸릇푸릇한 잔디밭도 걸어봤는지 보여줄 담벼락들. 아마도 꽤나 알록달록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