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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기 우정

여행의 묘미

by 제이로사
옥룡설산

해발 5,596m인 중국 리장의 옥룡설산과 옥룡설산에 걸린 구름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일행이 환히 웃고 있다. 일행이 서 있는 곳은 해발 3천5백 m 정도 되는 분지이다. 겨울 트레킹 복장으로 중무장했지만, 영하의 날씨에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다. 고도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금방 호흡이 가빠오고, 벌써 한두 사람은 고산증세로 구토와 두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특별한 체험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고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들이다.


“차마고도 알지? 교과서에서 배웠잖아. 아는 선배가 여행팀 구성하는데, 세 사람 남았대. 우리 갈까?” 교과서에서 배운 장소에 가보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다. 여행코스는 중국 윈난 성에 있는 일부를 걷는 것이지만, 접근이 쉽지 않은 여행코스다. 여행 일정은 11월이었다. 나는 여행사 패키지가 싫다. 낯선 사람도 불편하고, 시간에 쫓겨 양 떼 몰이를 당하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이번 여행은 여행사 패키지는 맞지만, 기본 인원을 우리 멤버로 충족하다 보니, 원하는 대로 코스를 잡고 일정 조정도 가능하다고 했다. 개인적인 목표로 고산증을 이겨내고 4천 미터 이상 올라 보는 것도 추가되었다.


대장 부부를 중심으로 지인들 열다섯 명이 가지치기로 모였다. 둘 또는 셋의 지인 추천으로 서로 얼기설기, 그렇게 모였다. 출발일에 공항에서 처음 일행을 만났다. 모여보니 세상은 넓고도 좁다. 일행 중 신부님은 나의 남편 젊은 시절에 인연이 있고, 대장 부부는 몇 년 전 크로아티아 여행 중에 정교회 성당에서 우리 일행과 만나 잠시 함께 걸었다. 놀라운 일은 환갑을 바로 코앞에 둔 내 나이가 제일 어렸다. 십수 년 전 네팔에서 4천 미터를 올랐던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속으로 기세등등해 있었다.


5명씩 뭉쳐 다니라고 했다. 우리 팀에는 나만 낯선 부부가 왔다. 내 지인들과는 대학 시절 인연이 있었다. 못난이 인형을 닮은 부부는 귀여웠다. 언니는 남편을 아들처럼 아꼈다. 신기한 부부 금슬이라 놀리며 금방 친해졌다. 비행기를 타고 출발했다. 아직 서로 낯설어 각자 지인들과 붙어 앉았다. 중국 성도 국제공항에서 1박을 하고, 최종 목적지가 있는 여강 공항을 향해 비행기에 올랐다. 총무를 맡은 언니가 선뜻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자기 안녕?” “내가 고등학교에서 회계 가르쳤다고 나더러 총무 하라네. 대장 형이 까라면 까야지 뭐. 크크. 경영학과 갔을 때 내가 회계를 가르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근데 자기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어?” 그때부터 언니는 여강 공항에 내릴 때까지 1시간 반 동안 자신의 과거와 내 과거에 대해 쉼 없이 교류시켰다. 난 그렇게 총무 언니한테 길들여졌다.


본격 산행 출발 전 식사를 위해 식당에 도착했다. 낯선 얼굴들끼리 테이블에 앉아서 별말 없이 맨숭맨숭한 얼굴로 재빨리 점심을 먹었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어색한 미소만 남발했다. 옥수수와 물 등 개별 간식을 나눠지고, 드디어 차마고도 산행을 시작했다. 멀리 옥룡설산의 십여 개 봉우리가 만든 누워 있는 용을 보면서 출발했다. 중국과 티베트의 옛사람들이 차와 말의 교역을 위해 다니던 길, 더 먼 옛날에는 쥐와 새만 다녔다던 길에 멀리 서울에서부터 달고 온 먼지와 마음의 티끌을 떨구었다. 첫날의 목표는 28 밴드 구역으로, 해발 2천6백 미터까지 올라가야 했다. 다들 직장에서 간신히 휴가를 내고 온 터라, 트레킹을 위해 사전에 몸을 만들고 왔을 리 없었다. 시작 지점이 해발 2천 미터 이상이고 산세가 가팔랐다. 30분 정도를 올랐는데 벌써 숨이 막혀 왔다. 1시간쯤 지났는데 일행 중 몇 사람이 구토하고,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맨 뒤 그룹 저질 체력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제일 젊다고 촉망받던 기대는커녕, 70대 중반의 신부님이 우리 일행을 뒤에서 지키고 있었다. 처지는 몸과 가쁜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여길 왜 온다고 했나, 어쩔, 올라가야 산다.’ 나는 외쳤다.

“이제부터 다섯 걸음 가고 열 번 숨 쉴게요!”

“시작!”

그때부터 우리는 나름 일사불란하게 다섯 걸음 올라가고 열 번 큰 숨을 쉬면서 조금씩 올라갔다. 침묵 고행이 이어졌다. 다행인 건, 모두 비슷하게 저질 체력이었다. 뒤에서는 낙오자를 태우라고 현지인이 조랑말을 끌고 따라왔다. 조랑말 목의 땡그랑 종소리가 숨 가쁜 우리의 목을 더욱 조여왔다. 우리는 낙오자 없이, 다른 트레킹 여행객보다 1시간 더 결린 4시간 만에 그날의 숙소인 차마 객잔에 도착했다.

“고마웠어. 같이 걸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이튿날은 다행히 평지 길이 이어졌다. 호도협의 장관 속을 걸으며,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앞선 사람들의 존재가 결국은 나구나, 평생 한 번이 될 이 길처럼, 인생도 한 번이구나. 그것이 괜히 짠해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그 순간 존재했음을 확인이라도 받을 양으로. 그렇게 우리는 첫날 고산증과의 전투를 이겨내고, 둘째 날은 서로 동지가 되어 중호도협을 향하여 산길을 행군하고 있었다. 중간에 잠깐 휴식을 위해 중도 객잔에 도착했다. 중도 객잔의 천하제일화장실은 잊을 수가 없다. 여성 화장실을 들어가니, 입구 쪽 중심으로 3면만 벽이 있고 변기가 위치한 쪽으로는 뻥 뚫려 그대로 산의 경치가 보였다. 3~4개(?) 칸이었는데, 쭈그려 앉으면 어깨까지 오는 가림막이 있고, 볼일 보는 아래에는 3개 칸을 관통해서 뒤쪽에서 앞으로 물이 흐른다. 볼일을 보는 대로 앞으로 쓸려 내려가는 전통 수세식이었다. 대신 일어서면 앞사람의 허연 엉덩이가 다 보인다. 우리는 감탄하며 휴지를 나눠 들고 화장실 동지가 되었다. 밤마다 나눈 중국술 백주 덕에 낮에 쓴 우리의 무협지는 감동이 더해졌다.

차마고도길

다음날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옥룡설산 트레킹이었다. 몸이 허락하는 자들은 가능한 대로 4천 미터 이상 오르자고 각오를 다지며 아침 일찍 장선생 객잔을 나섰다. 여행 4일 차였던 이날, 우리는 이미 십수 년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었다. 벌써들 언니, 형, 아우 하면서 함께 한 걸음이라도 더 높이 올라 보자고 응원했다. 칼바람 속 옥룡설산 국립공원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천3백 미터인 트레킹 시작점에 도착했다. 고산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행히 나는 숨 가쁜 것 말고는 별 증상이 없었다. 하지만 네다섯 사람은 또다시 고산증으로 뒤처졌다. 한 시간쯤 천천히 걸어 산야 목장에 도착했다.


여기부터는 두 개의 팀으로 나누었다. 아래로 내려가 파노라마 장관을 보는 팀과 4천 미터 이상 오르는 팀. 다섯 명은 내려가고, 열 명은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산길은 눈과 돌로 미끄럽고 가팔랐다. 산을 오를수록 숨은 더욱 가빠지고, 간신히 1백 미터씩 올랐다. 경사면에서는 앞에서 잡아주고, 뒤에서 지켜주며 천천히 조금씩 걸어 올라갔다. 길이 좁아지고 점점 가팔라질수록 우리의 신경도 날이 세워졌다. 어느 순간, 나는 길이 너무 무서워졌다. 길은 안전대도 없고, 젖은 자갈 때문에 미끄러웠다. 자칫 한 발이라도 헛디디면 그냥 추락이었다. ‘그만 멈추고 돌아가겠다’라는 말이 목구멍 끝에 걸려 있었다. 그때 선두 언니가 소리쳤다.

“난 더 이상 못 가겠어.”

“그럽시다! 그만 돌아가자!”

“중도 포기가 아닌 최선이었어. 산에선 욕심내지 말아야 해.”

선두 언니 앞에는 60도 이상의 비탈이 서 있었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서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격려했다. 가이드가 4,016미터라고 알려주었다. 누군가 기억하기 좋고, 입에 붙는 4,018미터로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 합창했다. “네!”


내려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걸음을 멈추었다. 고산증의 하나로 배변 증상도 있는데, 빼놓고 가면 서운했다. 우리는 멀찍이 서서 옥룡설산에 제대로 영역표시 했다고 축하해 주었다. “호도협 호랑이가 맞짱 뜨러 오겠네요.” 별도의 화장실이 없어 이미 우리는 엉덩이를 까고 모두 작은 마킹을 해댔다. 옥룡설산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에게는 얼마나 영광인가. 우리는 은밀한 비밀을 공유한 사이가 되었다. 그만큼 우정의 두께도 두꺼워졌다.


산의 높이만큼, 걸어간 발걸음만큼 우정이 쌓여갔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설산의 장관은 덤이었다. 일행들은 거대한 설산의 분지를 고요히 걸어갔다. 구름 사이로 비친 햇빛에 고독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산신령처럼 걸었고, 눈이 마주치면 천상계처럼 웃었다. 살면서 한 번 가보기 힘든 곳에서 만난 이 인연들은 역시 특별했다. 6일이 아닌, 60년 우정 인양, 벌써 다음엔 안나푸르나에서 만나자고 들썩이고 있다. 벼락치기 우정을 쌓은 산 같은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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