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명반 헌터스] 1. 서태지와 아이들 1집
BTS의 빌보드 정복부터 음반시장을 넘어 OTT와 극장가까지 점령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이르기까지 이제 K-pop은 대중문화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콘텐츠가 되었다. 그런데 물질적 발명품도 아니고 문화적 장르에 있어서 ‘탄생일’이 있을 수 있을까? 바로크 음악이, 록 음악이, 재즈가 언제 만들어졌다고 정확한 날짜를 추정할 수 있을까?
신묘하게도 K-pop에 있어서만큼은 그 대답은 “예스!”다.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2023년 6월 K-pop을 대표하는 100곡을 선정하면서 “모던 K-pop은 탄생 일화만이 아닌 ‘탄생일’ 자체가 있다”고 적었다. 그 탄생일은 바로 1992년 4월 11일이다. 바야흐로 전무후무한 하나의 장르가 만들어졌다고 세계가 인정하는 그 날이다.
All Roads Lead to Seo Taiji
1992년 4월 11일은 한국 대중음악계 아니 대중문화 전체를 통틀어 하나의 확연한 변곡점으로 기억되는 날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경하게도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던 그 시절, 오전 수업을 마치고 재빨리 TV 앞으로 모여들어 MBC에서 새롭게 론칭 했다는 연예정보 프로그램 ‘특종! TV연예’ 1회를 지켜보던 전국의 10대들에게 요즘 10대의 ‘주 6일 학교’보다 더 생경하다 못해 괴상한 이름을 가진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남성 3인조가, 트로트와 발라드밖에 없던 가요시장에서 아직 북미 시장에서조차 메이저라고 언급하기에는 결코 쉽잖은 랩/힙합 장르를 들고(심지어 중간에 요란한 메탈 기타 솔로까지 동반한), 일본 아이돌 풍의 소방차 율동과는 비교도 안 되는 패션과 브레이크 댄스까지 정신없이 퍼부었으니 매체도 몇 개 없고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던 33년 전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정규 1집 앨범을 발매한 3월 23일보다 일찍인 3월 12일 이미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특종! TV연예’에서 전국적인 신드롬을 낳게 된 데는 결정적인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는 1980년대와 확연하게 차이를 두고 싶었던 1990년대의 10대들, 즉 흔히 말하는 X세대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첫째, 프로그램의 성격 차이다. 흔히 ‘토토즐’로 줄여서 일컬어지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는 1981년 시작된 MBC 대형 쇼 프로그램 ‘쇼2000’을 전신으로 하는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간판 MC 이덕화는 ‘쇼2000’부터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던 때는 이미 40대 ‘아저씨’였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1990년대의 10대들에게는 이미 ‘올드한’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반면 ‘특종! TV연예’는 이제야 문을 연 ‘신상’ 프로그램이었고, MBC 자체에서도 당시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상징 격인 KBS ‘연예가중계’와 뚜렷한 차이점을 드러내고자 세트 설정부터 진행자, 코너 포맷까지 꽤나 신경을 썼다. 당시 ‘특종! TV연예’의 조연출은 ‘토토즐’의 AD인 고재형 PD였고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 타이틀곡 ‘난 알아요’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특종! TV연예’ 방송 직후 ‘토토즐’을 통해 뮤직비디오를 내놓으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열풍에 일조했다. 바야흐로 한국에서도 MTV처럼 ‘보는 음악’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둘째, ‘특종! TV연예’에서 ‘난 알아요’를 혹평한 심사위원단의 존재였다. “멜로디 부분은 다른 곡보다 좀 신경을 안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다소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가 20년 넘게 ‘흑역사’로 고통받고 있는 작곡가 하광훈은 ‘홀로 된다는 것’ ‘너에게로 또 다시’를 작곡해 변진섭을 이문세의 뒤를 잇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가요계의 제왕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가사에 아쉬움을 표한 작사가 양인자는 아직도 종종 패러디되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을 써 내려간 거목이다. 시나위 시절 서태지를 알기에 최대한 나쁜 말을 자제한 전영록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이었다.
이렇듯 80년대의 대표주자들, 즉 90년대의 10대들이 보기엔 ‘꼰대’고, ‘아저씨’고, ‘구시대의 산물’인 듯한 ‘기성세대’ 앞에서 새로운 세대가 원하는 음악과 춤과 패션을 들고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연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차별되는 혁명적인 문화와 상징을 갈구하던 10대들에게 완벽에 가까운 서사를 제공했다.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 두 달 전인 1992년 2월 내한 공연을 했다 압사 사고가 터지며 어른들로 하여금 “요즘 애들 말세”라고 혀를 차게 했던 뉴키즈 온 더 블록의 한국판 대체재가 10대들이 절실히 소구했던 그 타이밍에 제대로 등장하게 되었고 대중음악의 중심은 팝에서 가요로, 라디오에서 TV로 완전한 패러다임 전환을 맞았다. 명실상부한 ‘90s 아이콘’의 등장이었다.
춤을 추는 메탈 키드의 딜레마... 3년 만에 사라진 신화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한국 대중음악 사상 최고의 명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들국화 1집, 유재하 1집, 산울림 1집, 김민기 1집, 어떤날 2집... 그보다 위에 자리할 앨범들은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대중음악 사상 가장 영향력 있었던 앨범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꼽는 건 어렵지 않다. 마치 한국 영화 사상 최고 명작으로 강제규의 ‘쉬리’를 꼽는 이는 거의 없겠으나, 최소한 상업적으로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영화로 ‘쉬리’를 언급할 이는 상당수인 이치와 맞물린다. ‘쉬리’가 없었다면, 봉준호와 박찬욱이 빚어낸 21세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오기 어려웠거나 한참 뒤로 미뤄졌을 것처럼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 없었다면 수백만이 포진한 아이돌 팬덤도, HOT의 출연도, 더 나아가 BTS로 상징되는 K-pop의 국제적 성취도 아직도 누군가가 꿈꾸는 먼 미래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자신의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서 “서울북공고 야간 1학년 중퇴자인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을 때 한 달 만에 전국의 10대들이 그를 자신들의 대변인이라고 몰아주었던 것 같다. 만약 서태지가 신해철처럼 서강대 중퇴만 했었어도 절대로 그렇게 팔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억지로 끼워 맞춘 사후 해석에 불과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을 때 물론 서태지의 학력을 따지는 이도 있었겠으나, 적어도 ‘난 알아요’가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지배하던 시점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증폭시킨 원천은 서태지의 음악이었고 아이들의 춤이었다. 당시 10대를 대상으로 한 잡지들이 줄기차게 해 댔던 인기 투표에서 인기 순위 1위는 놀랍게도 서태지가 아닌 이주노였다. 서태지가 아이들을 저 멀리 떨어뜨리고 가요계의 절대자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음악적인 영역에서만큼은 ‘난 알아요’가 가져온 충격파의 몇 곱절을 퍼부은 2집 앨범 타이틀곡 ‘하여가’부터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서태지의 ‘저학력 신화’와 ‘문화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진 것은 통일과 교육 등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수록곡도 아닌 타이틀곡으로 전면에 내세운 3집 부터 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3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만을 남긴 채 서둘러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태지는 영국 프로그레시브록밴드 핑크 플로이드를 흠모하는 메탈 키드였고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으며 결국 록을 하고 싶었던 사내다. 정규 1, 2집 앨범만으로 300만 장이 넘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뒤 자신을 스타덤에 오르게 해 준 랩/힙합에서 벗어나 얼터너티브록의 외피를 들고 3집 앨범을 들고나왔을 때 그룹의 맏형 이주노는 자서전 ‘나는 영원한 춤꾼이고 싶다’를 통해 “이런 음악을 하는 데 춤꾼인 나와 현석이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지막 앨범이 되는 4집에서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인 듯 갱스터랩 ‘컴 백 홈’을 타이틀 곡으로 선사한 서태지는 후속곡 ‘필승’에서 두 춤꾼에게 베이스와 드럼 스틱을 안긴다. 서태지가 하고 싶었던 음악과 해야 했던 음악의 불완전한 동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실제로 3집 앨범을 듣고 상당수의 1-2집 앨범 당시 팬들이 떠나갔다. ‘아이들’의 팬들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서태지의 랩을 듣고 아이들의 춤을 보고 싶었지, 서태지의 록을 듣고 싶진 않았던 많은 10대들은 또다시 새로운 대체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빈틈을 절묘하게 파고 든 두 남자가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1992)
1 Yo! Taiji
2 난 알아요 : Club Mix
3 환상속의 그대
4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5 이 밤이 깊어가지만
6 내 모든 것 : Live Mix
7 이제는
8 Blind Love : English Version
9 Rock'N Roll Dance : '92 Heavy Mix
10 Mis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