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명반 헌터스] 2. 듀스 'Force Deux'
서태지와 아이들이 평정한 중원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까닭은 음악 외적과 내적인 이유로 쪼갤 수 있는데, 먼저 음악 외적인 원인으로는 서태지가 본격화한 앨범과 앨범 사이 뚜렷한 공백기를 가지는 활동 방식에 있었다. 봄이나 여름에 정규 앨범을 발표한 뒤 연말까지 방송 활동과 전국 순회 콘서트를 병행하고, 새해에 들어서면 감쪽같이 사라져 두문불출하다 다시 여름이나 가을에 고재형 PD가 연출하는 MBC 컴백쇼를 통해 깜짝 복귀하는 식이었는데 활동이 끝나고 새앨범으로 돌아올 때까지 적어도 반 년 이상의 공백이 발생했고 이를 채워줄 대체재의 필요가 증폭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순리였다.
태없듀왕 – 태지가 없으면 듀스가 왕
음악 내적인 원인은 전편에서 언급했듯 2집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메탈 키드로서의 서태지의 정체성 찾아가기에서 비롯된 것인데, 얼터너티브록을 기반으로 스래시메탈밴드 크래쉬의 프론트맨 안흥찬까지 끌어들인 3집에서 절정에 달하며 1-2집의 서태지를 기대했던 상당수 팬들의 이탈을 불러오고 만다. 3집 앨범이 서태지와 아이들 정규앨범 4장 중 가장 낮은 판매고를 기록한 이유(낮아봤자 무려 150만장을 팔아치웠다)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서태지가 거대하게 이뤄놓고 떠나버린 주인 없는 댄스 필드에 너도나도 깃발을 꽂으려 혈안이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과 더불어 적어도 댄스 신에서는 양대산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현진영은 마약과 함께 사라졌고, 이름부터 ‘짜가’ 티가 너무 났던 제갈민과 울랄라, 신영섭과 트로이스 같은 아류는 여지없이 실패했다. 잼은 ‘원히트 원더’였고 노이즈는 훌륭한 팀이었지만 앨범마다 기복이 심한 성적을 내면서 제왕의 자리에 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음악 외적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백기를 채워나가며, 음악 내적으로는 점점 흑인 음악에서 백인의 메탈과 록으로 변해가는 서태지에 비해 꾸준히 흑인 음악 외길을 걸으며 힙합과 랩의 선구자 역할을 도맡은 팀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서태지와 동갑(빠른 생일인 서태지가 결코 말을 놓는 걸 허락하지 않았던)인 1972년생 두 남자 이현도와 김성재의 듀스였다.
현진영과 와와 1기 댄서였던 강원래와 구준엽이 군에 입대하면서 친한 동생이자 빼어난 춤꾼이었던 이현도와 김성재를 이수만 대표에게 소개해 주면서 듀스의 뿌리가 싹튼다. 이태원에서 이름난 춤꾼은 여럿이었겠으나 이현도처럼 직접 음악을 만드는 댄서는 거의 유일무이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제작자였던 영기획의 유대영은 서태지의 대체자로 이현도를 눈여겨 봤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단군 이래 최대 성공을 거두고 연기처럼 사라진 1993년 4월 재빨리 듀스 1집을 프로듀싱한다.
인트로를 제외하면 달랑 6곡 밖에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만들어진 1집 앨범은 바비 브라운을 연상시키는 뉴잭스윙의 ‘나를 돌아봐’가 히트하면서 순식간에 열성팬들을 만들어낸다. 발라드도 제법 쓰는 이현도의 감각과 김성재의 랩, 패션 스타일까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현도의 작업 스피드는 최정상급이었는데, 1집이 급하게 만들어졌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하여가’ 열풍이 끝난 1993년 12월, 1집이 나온지 8개월만에 13곡이나 포진시킨 2집을 바로 내세워 ‘우리는’을 다시 한 번 히트시켰고 다시 9개월도 되지 않아 리믹스 앨범인 2.5집을 연이어 내놓는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활동 직후 나온 리믹스 앨범을 연상시키는 2.5집 ‘RHYTHM LIGHT BEAT BLACK’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Live & Techno Mix’와 달리 여러 신곡도 실려있고 현 시점 듀스 노래 중 가장 널리 불리고 있는 ‘여름 안에서’가 타이틀이라 명반 대접을 받고 있다.
허망한 죽음으로 2년 만에 막 내린 ‘힙합 조상’
하지만 듀스의 독자적인 사운드가 완성된 것은 1995년 공교롭게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발매되는 해와 같은 해 탄생한 듀스의 역시나 마지막 정규 앨범 ‘FORCE DEUX’다. ‘나를 돌아봐’ ‘우리는’에 이어 ‘굴레를 벗어나’가 다시 한 번 히트했고, 재즈가 가미된 ‘반추(反芻)’는 여전히 한국산 재즈 힙합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빈 자리를 노리고 자메이칸 랩을 들고 나왔던 룰라의 이상민에게 자메이카 랩이 이런 것이라는 걸 가르쳐 주기라도 하려는 듯 ‘Nothing but a Party’까지 처음으로 해외 세션을 참여시켜 오리지널 힙합을 바탕으로 다양한 변주를 해 내며 최소한 비평적인 측면에서는 서태지와 거의 동등한 지위까지 이현도의 자리를 격상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서태지처럼 록과 댄스의 딜레마도 없었던 것 만큼 훨씬 더 오래 갈 줄 알았던 듀스의 시계는 오히려 서태지와 아이들 보다도 짧은 2년 만에 멈추게 된다. 서태지가 장르 사이 갈등이었다면 이현도는 프로듀서와 가수 사이 역할 갈등이 빚어낸 딜레마였다. 이현도는 음악 웹진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흔히 회사와 3집 때 정도 되면 많이 부딪힌다고 하는데 정말 그 말이 맞더라. 그러다 보니 성재가 전면으로 나서고 저는 뒤에서 곡 써 주고 하면 좋을 것 같더라. 어떻게 보면 듀스 해체가 해방이었다”라고 밝혔다.
소속사와 갈등을 빚던 듀스의 해산은 1995년 5월 KBS ‘가요톱10’ 생방송을 펑크내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서둘러 고별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그룹 활동을 마무리한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 중 하나인 3집의 활동 기간은 채 3개월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성재 솔로-이현도 프로듀서의 체재는 언제든 듀스의 재결합을 가져올 수 있었고 듀스 활동이 끝난 지 4개월 만에 이현도의 손에서 빚어낸 김성재의 솔로 데뷔 앨범이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듀스의 신화는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운명의 1995년 11월 20일, 전날 SBS ‘TV가요 20’을 통해 듀스 마지막 방송 4개월 만에 지상파 방송으로 돌아와 신곡 ‘말하자면’을 전성기의 퍼포먼스로 재현한 김성재가 의문의 죽음으로 불귀의 객이 되면서 듀스의 재결합은 영영 물거품이 되었다. 이현도가 김성재의 미공개 음원을 발굴해 믹싱한 ‘사랑, 두려움’이 듀스의 마지막 흔적으로 남았고 이제 듀스의 이름은 음악 프로그램 보다 범죄 프로그램에서 더 자주 언급되는 처지다.
프로듀서만 하고 더 이상 가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이현도는 김성재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이듬해 첫 솔로 앨범을 내고 ‘사자후’를 히트시켰으며 기타리스트 한상원과 명반 ‘D.O Funk’를 작업했고, 힙합 명반을 언급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完全 HIP-HOP’도 선보였다. 와중에 구본승의 ‘너 하나만을 위해’ 지누션의 ‘말해줘’ 룰라의 ‘3!4!’ 유승준의 ‘열정’ 등 히트곡들도 계속 배출했다.
그러나 힙합과 뉴잭스윙의 씨앗을 뿌린 듀스 시절, 특히 ‘FORCE DEUX’의 아성엔 근접하지 못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와 듀스의 해체로 K-Pop의 주류는 새로운 지배자의 등장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 지배자는 10대의 다섯 소년이었으며 지배자가 될 수도 있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듀스 'Force Deux'(1995)
1 Force Deux : Intro
2 굴레를 벗어나 : Mo' Funk Version
3 다투고 난 뒤
4 상처
5 意識魂亂
6 Nothing But A Party
7 너에게만
8 이제 웃으며 일어나
9 Message
10 In The Mood : 눈을 감고...
11 反芻
12 사랑하는 이에게
13 굴레를 벗어나 : Tuff Ruff Version
14 Ou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