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명헌] 봄날

[케이팝 명반 헌터스] 10. BTS 'YOU NEVER WALK...'

by 간지훈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9월 5일은 한국 대중음악사 100년에서 “영원히 깨질 수 없는” 혁명과도 같은 날이다. ‘강남스타일’의 벼락같은 성공에 꿈인지, 현실인지 와닿지 않았던 빌보드차트라는 생경한 외계의 가장 높은 자리에 마침내 K-POP이라는 고유명사가 새겨진 날이기 때문이다. BTS의 디지털 싱글 ‘Dynamite’가 빌보드 싱글차트 HOT100에서 1위로 데뷔한 것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서도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가 팝 시장조차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던 고대 시절, 1963년 1위를 차지한 이래 반세기를 훌쩍 넘어서 이룬 두 번째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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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작은 것들을 위한 시


그렇다고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에서 ‘Dynamite’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BTS 음반 중 가장 명반으로 평가받는 LOVE YOURSELF 結 ‘Answer’를 언급할 생각도 없다. ‘Dynamite’만큼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것도, ‘Answer’ 앨범만큼 평단의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멤버들 스스로에게는 그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고 팬들은 물론 사회적 영향까지 파장을 가져왔으며, 어찌 보면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로 그 노래 ‘봄날’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중소기획사에서 상업적인 댄스 아이돌이라기보다는 에픽하이와 같은 힙합 그룹으로 포지셔닝됐던 방탄은 칼군무와 같은 퍼포먼스로 주목받긴 했지만, 2010년대 초반 포화상태였던 아이돌 시장에서 대형기획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나오자마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다른 그룹들에 비하면 더딘 출발을 보였다. 약 3년간의 도약기 혹은 위기를 겪으며 모든 것이 달라진 건 2016년 가을에 발매된 정규 2집 앨범 ‘WINGS’를 통해서였다.


‘방탄의 아버지’ 방시혁 스스로도 가장 애착을 보이는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은 10대 스쿨보이의 이미지였던 BTS의 콘셉트 자체를 크게 확장시켰고, 중소기획사에서 성장해 온 그들의 서사가 노래의 정체성과 쫀쫀하게 밀착하면서 성공에 당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 냈다. 해외팬들이 먼저 알아본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섹슈얼리티까지 강조되면서 뮤직비디오와 티저, 트레일러를 비롯한 파생된 영상물에 엄청난 전파력을 불러왔다. 이제 방탄소년단은 누가 뭐래도 초대형 아이돌로 성장했고 특히 미국 시장을 겨냥할 수 있는 역사적인 첨병으로 기대받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음반이 ‘WINGS’의 리패키지 앨범인 ‘YOU NEVER WALK ALONE’이다. 무려 ‘케이팝 명반’을 거론하는 마지막 글에서 정규 앨범도 아닌 리패키지 앨범을 꺼내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YNWA’의 타이틀곡 ‘봄날’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먼저 멤버들에 대한 위로다.


‘피 땀 눈물’의 강렬한 서사 이후 내놓은 차기작이 이렇게 따뜻한 노래일 거라곤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앨범 타이틀 자체가 ‘YOU NEVER WALK ALONE’이다. 10대 시절부터 만나 경쟁하고 다투며 살아남아 마침내 꿈꿔왔던 자리에 오른 일곱 남자들이 각자 어깨동무를 하고 더 높은 오르막길을 향해 서로를 북돋우며 걸어가는 모양새가 그려진다. ‘피 땀 눈물’을 흘리며 ‘봄날’을 맞은 그들이 결코 혼자 걷지 않았던 멤버들을 향한 헌사인 셈이다. 4년간의 치열하고 무서웠던 활동, 아니 연습생 기간까지 10년 가까이 부딪히며 불살랐던 과거에 대한 보상이자 따스한 위로의 손길이다.


봄날: YOU NEVER WALK ALONE


그렇게 힘들고 길었던 시간을 기다려주고 지탱해 준 팬들을 향한 ‘팬 송’으로도 들리는 ‘봄날’은 사회적인 외연으로 확장하면서 방탄소년단을 국민 아이돌로 격상시킨다. ‘YNWA’가 발표된 시점은 2017년 2월, 제목은 ‘봄날’이지만 노래는 겨울에 나왔고 그들은 “눈꽃이 떨어져요”라고 노래한다. 시절은 더욱 냉혹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국정농단 사건이 낱낱이 드러났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되어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BTS의 정국은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라고 희망을 들려준다. ‘봄날’이 발표되고 한창 플레이되던 그해 3월, 헌정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뮤직비디오에 명징하게 노출되는 노란 리본은 동시대를 살아간 그들에게도 커다란 상처였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떠오르게 한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희생된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생들은 1997년생으로 BTS의 막내 정국과 동갑이다. 자신들의 친구, 동생 혹은 팬이었을 희생자들에게 닥친 커다란 비극은 사춘기였던 그들에게, 사춘기인 그들의 팬에게 울림을 전하는 그들에게 누구보다 둔중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세월호 침몰에 눈물을 흘렸을 누구에게, 국정농단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언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지켰을 또 누구에게 “아침은 다시 올 거야 어떤 어둠도 어떤 계절도 영원할 순 없으니까”라는 ‘봄날’의 응원과 위로는 탄핵 이후 새롭게 다가올 2017년의 ‘봄날’에 대한 기대와 함께 10대의 힙합 아이돌이었던 방탄소년단에 대한 인식을 20-30대는 물론 그 위 연령층까지 훨씬 폭넓게 확장시켰다.


이제 ‘국가대표 아이돌’이 된 BTS는 같은 해 11월 아메리칸뮤직어워드 무대에 오르면서 마침내 미국 TV 데뷔를 이루고 본격적인 ‘코리안 인베이전’에 돌입한다. 이후 역사는 다 알다시피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데, 2018년 ‘FAKE LOVE’가 10위, ‘IDOL’이 11위에 오르며 시동을 걸더니, 2019년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마침내 TOP10 안에 진입했고 2020년에는 서두에 언급한 ‘Dynamite’의 역사적인 첫 1위 이후로 ‘Savage Love’ ‘Life Goes On’이 연이어 정상에 오른다.


2021년에는 ‘Butter’가 무려 10주간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면서 2021년 발표한 모든 노래를 통틀어 최장기간 1위라는 신기원을 이룩한다. 50년 전 잭슨파이브의 이름까지 소환할 정도로 놀라운 역사였다. ‘Permission to Dance’ ‘My Universe’도 뒤이어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국이 ‘Seven’ 지민이 ‘Like Crazy’로 솔로로도 1위에 오르면서 무려 비틀즈와 비견되는 충격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멤버 전원이 군입대로 공백기를 가진 BTS는 어느덧 데뷔가 10년이 넘었고 멤버들도 30대에 대부분 이르렀다. 이제 댄스 아이돌로서 그들의 ‘봄날’은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8년 전 그들이 들려줬듯 이제 팬들이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꽃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BTS ‘YOU NEVER WALK ALONE’(2017)


1. Intro : Boy Meets Evil


2. 피 땀 눈물


3. Begin


4. Lie


5. Stigma


6. First Love


7. Reflection


8. MAMA


9. Awake


10. Lost


11. BTS Cypher 4


12. Am I Wrong


13. 21세기 소녀


14. 둘! 셋! (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


15. 봄날


16. Not Today


17. Outro : Wings


18. A Supplementary Story : You Never Walk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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