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명반 헌터스] 9. 김건모 'Kim Gun Mo 3'
빌보드 싱글차트인 핫100에서 장기간 2위를 하다 끝내 1위 자리까지는 오르지 못한 ‘강남스타일’이 나왔으니 이제는 마침내 한국민들에게는 한 없이 먼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그 1위 자리에 등극한 BTS의 이야기를 할 차례가 왔다. 하지만 그에 앞서 BTS가 해외 팬까지 동원해 24년이나 걸려 깨뜨린 최다 음반 판매의 주인공이었던, 천하의 서태지조차 이기지 못한 1990년대 흥행의 제왕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잘된 만남
서울예대 국악과 재학 시절부터 박성신, 김혜림 등과 노래 잘하기로 소문났던 김건모는 록밴드 평균율의 보컬로 활동하다 역시 노래로 둘째가면 서러웠던 박미경의 소개로 라인음향의 김창환을 만나면서 가요계에 발을 디딘다. 이미 신승훈을 프로듀싱하면서 1990년대 초반 서태지에 필적했던 김창환의 라인 사단은 김건모까지 영입하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매머드급으로 성장하게 된다.
시작은 기대만큼 창대하지는 못했다. 이승철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는 한국에서 듣기 어려웠던 소울풀한 음색으로 색다른 신인의 등장을 알렸지만, 1992년 가요계를 장악한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김원준으로 이어지는 댄스 아이돌에 필적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재지한 감성을 내세운 후속곡 ‘첫인상’이 김건모에게 첫 1위를 안겨주면서 가요계의 선두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발매한 정규 2집 앨범의 타이틀곡은 김건모의 가창력을 명징하게 살린 천성일-김형석의 명 발라드 ‘혼자만의 사랑’이었는데, 1994년 가요계를 뒤덮은 ‘레게 열풍’과 더불어 김건모를 가수왕으로 만들어준 것은 ‘핑계’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보다 많이 팔린 김건모의 어마어마한 성공으로 1994년 여름 가요계는 룰라, 임종환, 투투, 마로니에 심지어 김흥국까지 죄다 레게를 들고나와 열대 야자수가 그려진 현란한 셔츠를 입고 펑퍼짐한 반바지와 색색의 두건, 워커 차림이었다.
하지만 ‘핑계’는 시작에 불과했다. 레게 열풍이 시들해질 때쯤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게 최신 팝 트렌드를 빠르게 이식했던 김창환은 이번에는 유로비트의 하우스로 승부를 건다. 3집 역시 본래 타이틀곡 후보는 또다시 김형석의 빼어난 발라드 ‘아름다운 이별’이었으나, 이른바 ‘길보드차트’에서 길을 걷던 누구라도 돌아보게 인상적인 인트로의 그 곡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자 바로 활동 곡이 바뀌었다. 김건모를 국민 가수로 만들어 준 ‘잘못된 만남’이었다.
잘못된 이별
사실 ‘잘못된 만남’이 그렇게까지 성공할 것이라곤 김창환이나 김건모도 몰랐을 것이다. ‘잘못된 만남’의 그 유명한 인트로는 사실 당시 흔했던 16비트 하우스 리듬의 단순한 반복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비트를 그렇게까지 빠른 RPM으로 길게 뽑은 김창환의 판단이 적중했고, 그 비트가 식상해지려는 시점에서 터지는 김건모의 보컬이 모든 걸 감싸 안는다.
특히 김건모에게 어설프게 랩을 시키지 않은 점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부터 김건모는 다소 밋밋한 랩을 구사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에 이어 듀스가 한국어로 본토 랩의 아우라를 들여온 시점에서 수준 이하의 랩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오히려 김건모의 가볍고 높은 발성과 능수능란한 완급 조절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빠른 고음으로 숨 쉴 틈 없이 가사를 내지르면서 되려 랩보다 강렬하게 비트에 접착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되었다.
단순하고 쉬운 노래라는 장점은 김건모를 소구하는 팬층을 엄청나게 넓혀놓는데 크게 기여했고 결국 그는 조용필도, 서태지도 이르지 못한 금자탑을 쌓는다. 발매 3달 만에 250만장을 넘게 팔며 무려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고 공식적인 판매량은 330만장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보드차트’의 불법 음반이 횡행했던 시절임을 감안 하면 판매고는 경이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같은 해 10월에 나왔는데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수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한국 대중음악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3집의 역사적인 성공 이후 3년 동안 김창환의 혹독하고 엄격한 프로듀싱과 충돌을 일으키던 유별나게 자유분방한 성격의 김건모는 독립을 선언하고 홀로서기에 나선다. ‘잘못된 만남’과 1995년 가요대상을 두고 맞붙었던 ‘날개 잃은 천사’의 프로듀서 최준용과 손잡고 직접 프로듀싱한 4집 앨범은 ‘스피드’를 타이틀로 1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김창환이 없이도 건재함을 증명했다. ‘핑계’-‘잘못된 만남’-‘스피드’로 이어지는 3연속 히트로 3년 연속 골든디스크 대상이라는 최초의 역사도 써 내려간다.
김창환의 라인도 김건모 없이도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김건모의 빈자리를 채운 클론의 데뷔곡 ‘꿍따리 샤바라’가 KBS ‘가요톱10’에서 ‘스피드’의 골든컵을 저지하고 1위를 차지한 것은 상징적이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신인 그룹 콜라가 실패하고 세무조사와 내부갈등이 겹치면서 제국은 허망하게 쇠락하고 만다. 김건모가 떠난 1996년에 H.O.T.가 데뷔한 것은 운명적이었다. 10대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재편된 가요계에서 라인음향이 내놓을 적임자는 전무했다. 강원래의 교통사고로 클론의 활동이 중단된 것도 치명적이었다.
김건모의 전성기도 빠르게 지나갔다. 물론 히트곡들은 여럿 배출했다. 하지만 4집까지의 김건모는 김창환의 지휘와 더불어 최신 영미 트렌드를 빠르게 수입해,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자신만의 아우라로 녹여내 흥행과 비평을 모두 만족시키는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과 함께 9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이후 김건모는 성인 취향의 ‘미안해요’ ‘청첩장’ 등의 발라드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짱가’ 등 코믹한 후속곡, ‘빗속의 여인’ 등 리메이크곡을 첨부하는 전형적인 행사용 레퍼토리를 갖춘 상업적·대중적인 가수 그 이상은 아니었다.
13년이나 지나 2008년 정규 12집 앨범을 다시금 김창환에게 맡긴 김건모였으나 ‘화양연화’는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김건모는 무대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장난을 치다 ‘나는 가수다’를 나락에 빠뜨리거나, ‘미운 우리 새끼’ 이후 사생활 문제에 휩싸이는 등 과거의 업적을 갉아먹는 논란만을 만들어냈다. 김창환 역시 1990년대 초반의 김건모를 30cm 자로 때리며 훈육하던 육성법을 30년 가까이 지난 최근까지도 쓰던 구시대의 악습을 대표하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잘못된 이별’로 ‘잘못된 만남’의 성공은 다시는 재현되지 못했고, 그 기록적인 숫자는 K-POP의 대명사와도 같은 소년들이 깨뜨리기 전까지 마치 전설처럼 봉인되어 있었다.
김건모 'Kim Gun Mo 3'(1995)
1. 아름다운 이별
2. 드라마
3. 이 밤이 가면
4. 너에게(마음으로 하는 말)
5. 너를 만난 후로
6. 잘못된 만남
7. 멋있는 이별을 위해
8. 겨울이 오면
9. 넌 친구? 난 연인!
10. 그대와 함께
11. 겨울이 오면 (Bonus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