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명헌] 강남스타일

[케이팝 명반 헌터스] 8. 싸이 ‘싸이6甲 Part 1'

by 간지훈

싸이 역시 ‘쌈마이’를 자칭했지만 DJ DOC와 달리 일종의 ‘콘셉트’에 가까웠다. 실제로는 강남 부잣집 출신에 좋은 학교를 나왔고, DJ DOC처럼 무면허 음주운전이나 폭행 전과에 계속 얽힌 적도 없었다. 오히려 일련의 사건들로 업앤다운을 쉼 없이 겪은 뒤 30대 중반에 이르러 이제 폭발력도 파급력도 수그러들고 무대 뒤로 쓸쓸히 사라질 차례를 기다릴 무렵, ‘충격과 공포’의 ‘빅뱅’이 터지며 ‘인생사 새옹지마’의 살아있는 증거로 남았다.


인생사 롤러코스터: 데뷔 10년에 활동 2년


싸이의 활동 1막이라 할 수 있는 2001년 데뷔부터 군 복무 후 복귀작인 ‘PSYFIVE’까지 10년을 훑어보면 정규 5집 앨범 수록곡 ‘싸군’의 가사에 모든 게 내포되어있다. “대마 1년 자숙 1년 대체복무 3년 재판 1년 현역 2년 합이 8년 데뷔 10년에 활동 2년”


H.O.T., S.E.S., 핑클 등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들이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2001년 ‘엽기 가수’라는 당시 한창 온라인을 통해 유행하던 ‘엽기 문화’를 내세워 성공적으로 데뷔한 싸이는 그 해 말 정규 2집 앨범을 내놓으며 남다른 추진력으로 데뷔곡 ‘새’의 성공을 이어갈 태세였다. 그러나 2집 타이틀곡 ‘얼씨구’의 뮤직비디오까지 촬영이 끝난 2001년 11월 15일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롤러코스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슈퍼스타도 아니고,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애송이가 대마초로 물의를 일으키니 가뜩이나 ‘새’의 콘셉트나 가사 내용에 불만이 많던 일부 미디어나 시민 단체도 ‘얼씨구’나 하고 들고 일어섰고 데뷔한 지 10개월 된 신인은 그만큼의 시간을 자숙하는 데 보내야 했다. 하지만 ‘될놈될’이라고 싸이에게 ‘천우신조’의 기회가 왔으니 바로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다.


10개월의 자숙 후 발매된 정규 3집 앨범 타이틀곡 ‘챔피언’은 역대급으로 성공적으로 끝난 한일월드컵 직후 나와 축제 분위기를 타고 침몰한 것 같았던 싸이를 다시 ‘가요계의 챔피언’ 자리로 올려놓는다. 이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게 된 싸이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 맞춰 4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제2의 챔피언’ 특수를 노렸으나 병역 비리가 터지면서 또 한 번 롤러코스터에 탑승하게 된다.


대체복무 기간 중 무려 56차례나 공연하는 등 부실 복무 사실이 드러나면서 빈축을 산 싸이는 대체복무가 취소됐고 만 서른을 코앞에 두고 현역으로 재입대해야 했다. 복무 중 열심히 항소, 상고심을 진행했으나 패소하였고 결국 만기 전역하면서 “55개월을 씹냐 어디서”라고 일갈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백기를 갖게 된다. 이때 ‘신의 한 수’가 터지면서 다시 롤러코스터에 오르는데, ‘새’로 첫 번째 1위를 차지할 때 자신에 밀려 2위에 그쳤던 지누션의 소속사 ‘YG’의 식구가 되는 선택이었다.


강남'The GOAT'스타일


자,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노래의 제목을 꺼낼 시간이다. 싸이 음악 인생 롤러코스터의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른, 아니 한국어로 만들어진 노래 중 그 어떤 노래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대중적 성과를 거둔, 누구나 다 아는 바로 그 노래 ‘강남스타일’ 말이다.


그럼 ‘강남스타일’의 전설적인 성공에 왜 YG엔터테인먼트의 존재가 ‘신의 한 수’라고 여겨질 정도로 중요했는지 톺아볼 시간이다. 우선 ‘강남스타일’ 자체는 잘 만든 노래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유달리 특출해서 말도 안 되게 불쑥 튀어나올 정도인가 하면 의문이다. ‘강남스타일’은 싸이와 언타이틀의 유건형이 공동 작곡해 히트한, 전편에서 다룬 DJ DOC의 마지막 히트곡 ‘나 이런사람이야’와 골격을 같이 한다. 거기에 2010년대 초반 클럽을 장악한 LMFAO의 ‘Party rock anthem’의 단순한 셔플 댄스가 강조된, 간단히 말하자면 당시 팝 음악계의 트렌드를 답습한, 어찌 보면 준수하지만 흔한 댄스곡에 불과할 수 있었다. 싸이의 재치 있는 가사는 내수시장 외에는 큰 의미는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노래 외에 무엇이 있었던가. 왜 3년 전 박진영 사단의 원더걸스는 실패했는데 ‘강남스타일’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성공을 거뒀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매체 환경의 변화가 첫 번째 답이다. 원더걸스는 투어 버스를 타고 쪽잠을 자면서 미국 전역을 누비는 강행군의 홍보를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소녀들은 “침대에서 편히 자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혹사당했고, 결국 탈퇴로 이어졌으며 JYP엔터테인먼트의 손해도 심각했다. 하지만 싸이는 미국에 단 한 발자국도 디디지 않고도 넘쳐흐를 정도로 홍보가 됐다. 유튜브로 상징되는 SNS의 폭발적인 성장이 3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YG는 무슨 역할을 했나 하는 의문이 따른다. 어차피 유튜브로 홍보가 될 것이었으면 YG의 존재는 큰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영미권의 유튜브 생태계에서 먼 나라 대한민국의 30대 중반에 ‘듣보’ 말춤 추는 아저씨가 포커싱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의 채널이, 그의 소속사가 빅뱅과 2NE1을 만든 회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인지도가 높고 관심이 쏠려 있는 K-POP의 대표 회사에서 신선하게 튀어나온 뚱뚱한 아저씨는 눈길이 가기도, 손아귀에 잡기도 어렵지 않았다. 이미 그들에게도 유명한 지드래곤이 피처링을 하고, 현아가 뮤직비디오에 나왔으니 말이다. 대형기획사, 그것도 K-POP 아이돌을 주축으로 하는 회사의 힘이 본래 싸이의 힘과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낳은 결과물인 셈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해외 진출은 이후 K-POP 아이돌들에게도 좋은 선례로 남았다. 각 잡고 해외 진출에 매진했던 박진영을 비롯한 선배들은 처참한 실패로 남았는데, 해외를 타깃으로 하지 않고 ‘새’ 시절부터 원래 싸이가 하던 대로 우스꽝스럽지만 중독성 강한 춤을 추고 유쾌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내는 게 미국 시장에 맞춰 영어로 가사를 바꾸고 그들의 코드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싸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강남스타일’은 원래 정규 6집 ‘싸이6甲 Part 1’의 타이틀곡이었다. 앨범명에서도 알 수 있듯 원래 싸이는 이어서 발라드를 타이틀로 한 ‘Part 2’를 내놓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강남스타일’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두었으니, 여기서 발라드를 후속작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싸이는 누가 봐도 작정하고 ‘강남스타일’을 의식하여 해외 시장을 노린 ‘GENTLEMAN’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남스타일’보다 외국인들이 부르기 쉽도록 ‘더’ 반복적인 셔플과 ‘더’ 단순한 가사, ‘더’ 쉬운 ‘시건방춤’으로 ‘더 더 더’ 전략을 내세운 ‘GENTLEMAN’이었지만 ‘강남스타일’ 후속효과는 빠르게 식어버렸다. 결국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GOAT’급인 ‘강남스타일’의 싸이는 미국 팝시장에서는 ‘원히트원더’로 남고 말았다. “왜 ‘강남스타일’을 부른 그 가수는 다음 곡을 내지 않았지?”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밈으로 축약된다.


싸이의 아쉬움은 결국 싱글 하나의 성공이 앨범 전체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까닭에 있다. 이러한 아쉬움은 ‘강남스타일’의 성공 수년 후 일곱 명의 소년들이 앨범 자체를 거대하게 팔아치우면서 만회되었다. 그 기록은 국내 시장에서의 판매고 만으로도 ‘기네스북’이 언급된, 1990년대 흥행 제왕의 업적을 깨뜨리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싸이 ‘싸이6甲 Part 1’(2012)


1. 청개구리 (Feat. G-DRAGON)


2. 뜨거운 안녕 (Feat. 성시경)


3. 강남스타일


4. 77학개론 (Feat. 리쌍, 김진표)


5. 어땠을까 (Feat. 박정현)


6. NEVER SAY GOODBYE (Feat. 윤도현)

이전 07화[케명헌] 나 이런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