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명헌] 나 이런사람이야

[케이팝 명반 헌터스] 7. DJ DOC 'The Life... DOC'

by 간지훈

다시금 서태지와 아이들이 얼터너티브록의 외피를 쓰며 댄스 아이돌과 결별을 선언한 지점으로 돌아가 보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선 수 많은 도전자들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팀은 단연 룰라였다. 하지만 룰라가 SBS 가요대상을 차지하고도 표절 논란으로 추락한 시점,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룰라의 대체재로 기능한 ‘쌈마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쌈마이’들은 놀랍게도 아티스트로 진화하면서 여러 아이돌 그룹들이 흥망성쇠를 겪으며 사라지는 동안에도 굳건히 시장에 버티고 남았다.


DJ ‘덕’이 ‘디오씨’ 되기까지


혼성듀오 철이와 미애로 19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몰고 온 랩 댄스 열풍에 일익을 담당했던 DJ 신철은 1992년 전주에서 클럽 DJ로 활동하던 이하늘을 만나 본격적인 프로듀서의 길을 걷게 된다. 대구 출신 랩퍼 박정환과 서울 강서구 출신 DJ 김창열까지 합류해 1994년 2월부터 합숙에 들어가 서둘러 1집 앨범을 발표한 DJ DOC는 2집까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성공 이후 자고 나면 나오는 수많은 댄스 그룹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박정환 대신 속초 출신 DJ 정재용이 합류한 2집 타이틀곡 ‘머피의 법칙’이 재미있는 가사로 화제에 오른 정도가 특이할 만 했다.


DJ DOC가 대중음악계의 선봉에 서게 된 시점도 운명적이다. 듀스 김성재가 사망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했으며, 룰라가 표절 논란으로 좌초한 1996년 1월 정규 3집 ‘D際2德’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3집 앨범을 통해 그들은 주인 없는 가요계의 정상 자리에서 ‘겨울 이야기’ ‘미녀와 야수(OK? OK!)’ ‘Remember(그녀의 속눈썹은 길다)’ 3곡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2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는 등 일약 ‘포스트 서태지’의 주역에 섰다.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겨울 이야기’와 ‘미녀와 야수’가 1위 후보에 같이 오르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1980년대 후반 ‘너에게로 또다시’와 ‘희망사항’이 1위를 다투던 변진섭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듬해 나온 4집에서도 히트 행렬은 이어졌다. ‘머피의 법칙’에서 ‘디제이 덕’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그들은 ‘디오씨와 춤을’로 10-20대 뿐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와 춤을’로 개사해 홍보송으로 사용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4집은 음악 외적뿐 아니라 내적 측면에서도 큰 전환점을 가져온다. 투팍을 선망하고 갱스터랩을 하고 싶어 했던 이하늘의 음악적 욕심이 마침내 발휘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타이틀곡이 아니었음에도 의식적으로 1번 트랙에 배치한 ‘삐걱삐걱’과 ‘모르겠어?’는 향후 DJ DOC가 걸어갈 아티스트로서의 길의 초대장 같은 시대의 송가였다.


‘쌈마이’가 ‘아티스트’ 되기까지


갱스터랩을 하고 싶었던 그들의 욕망은 음악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갱스터처럼 살며 ‘언행일치’로 구현되었다. 여러 번 폭행 사건에 연루되며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불린 김창열은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에 부친상, 모친상까지 겹치며 사실상 활동이 중단됐고, 이하늘은 폭행 전과에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어주며 휴대폰 요금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졌다. 실제로 4집 역시 소속사에서 나온 이하늘이 솔로 앨범으로 만들던 와중, 김창열과 정재용이 뒤늦게 가세한 결과물이었다.


김창열이 앨범 작업에 거의 참여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신의 한 수’가 됐다. 이하늘과 정재용은 김창열의 보컬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랩만을 폭풍처럼 뱉어낼 수 있었다. 욕설만 47회가 들어간 ‘L.I.E’는 자신들을 양아치로 선동한 언론에 대한 분노였고, ‘Nuclear Lunch The Detect’ ‘포조리’는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The Life... Doc Blues 5%’는 ‘청소년 유해매체’로 분류됐고 지상파 3사에서 전 곡이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서울강남경찰서장 장기택은 음반 배포를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서울지방법원에 냈다. 명예훼손 고소도 잇따랐다.


가리온을 필두로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본격화되면서 1990년대의 ‘힙합 조상’들은 스킬적인 면에서 폄하되기 일쑤였다. DJ DOC의 5집도 마찬가지였다. 랩의 플로우나 라임은 어수룩하고 단순하고 촌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이 명반으로 대접받게 된 진정한 까닭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한다는 데 있다. 겉멋만 들어 최신 힙합 트렌드를 좇으며 영혼 없는 라임 맞추기에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바닥이 된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들 인생 그 자체를 농축시켜 원 없이 마이크로 쏟아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김창열이 참여한 타이틀곡 ‘Run to You’는 자신들에 ‘방송 불가’ 딱지를 붙였던 방송사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한국에서 진정한 ‘갱스터’랩을 하는 팀은 DJ DOC 밖에 없다”는 조롱과 찬사가 뒤섞인 상반된 반응과 함께 DJ DOC 멤버들은 계속 사고를 쳤고, 그 와중에 싸이가 프로듀싱한 ‘나 이런사람이야’로 10년 만에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오르는 저력도 과시했다. 물론 KBS ‘뮤직뱅크’에서 함께 1위 후보에 올랐던 보아가 1위를 차지하자 보아가 준 꽃을 집어던지고 발로 차면서 “대형 기획사가 아니라 음반을 사재기하지 못해 1위를 하지 못했다”는 헛소리까지 얹으며 '나 이런사람이야'를 실생활로 보여주기도 히면서 말이다.


끝까지 ‘쌈마이’이자 ‘갱스터’임을 웅변한 그들의 마지막 히트곡 ‘나 이런사람이야’는 프로듀싱한 싸이와 유건형이 공동 작곡하고 유건형이 편곡한 곡이다. 유건형은 ‘제2의 듀스’를 꿈꿨던 ‘언타이틀의 이현도’로 '책임져' '날개' 등을 히트시킨 가수 활동 이후에도 비, god 등에게 곡을 주며 실력을 인정받아왔다(‘The Life... Doc Blues 5%’에도 한 곡 실려있다). 그리고 싸이와의 공동 작곡은 ‘나 이런사람이야’에 이은 2년 뒤, 박진영이 실패한 미국 시장에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적을 만들어낸다.


DJ DOC 'The Life... Doc Blues 5%'(2000)


1. Intro (부제: 와신상담 / feat. 뿜빠이)


2. 비.愛 (Acoustic)


3. L.I.E (feat. Park.D)


4. Nuclear Lunch The Detect


5. 포조리 (feat. 뿜빠이, DJ Murf)


6. Boogi Night (feat. 뿜빠이)


7. Run To You


8. 기다리고 있어 (feat. 앤썸)


9. 아무도 모르게


10. 사랑을 아직도 난


11. Someday


12. D.O.C Blues


13. 부익부 빈익빈 (feat. 허인창)


14. 알쏭달쏭 (feat. 태웅, 후니훈)


15. Analog


16. Alive (feat. 45RPM, 뿜빠이)


17. 비.愛 (Orig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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