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명헌] 2 Different Tears

[케이팝 명반 헌터스] 6. 원더걸스 'The Wonder Years'

by 간지훈

19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솔로 댄스가수로서의 성공 이후 프로듀서로서 활동 영역을 확장한 고릴라 아니 박진영은 진주를 시작으로 그저 그런 아이돌 가수로 끝날 뻔한 박지윤을 이미지 변신시켜 논란과 함께 성공을 거두었고, god를 ‘국민 그룹’으로 만들었으며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시대가 저물 무렵 비를 톱스타로 키워냈다. 그러나 이후 발탁한 별, 노을, 량현량하, 임정희, 원투, 한나 등은 선배들만큼 거대한 성공에 이르지 못하면서 위기론이 대두되는 시점이었다. 이 때 박진영이 꺼내든 타개책은 이제는 한 물 간 것으로 여겨진, 1세대의 S.E.S.와 핑클 이후 누구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분야, 바로 걸그룹이었다.


단 한 곡으로 2세대 아이돌 시대를 개척하다


S.E.S.와 핑클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밀크,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를 비롯 다수의 기획사에서 걸그룹을 내놓았지만 누구도 1세대 아이돌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비단 걸그룹 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 자체가 돈만 많이 들고 딱히 아웃풋은 없는 흘러간 트렌드로 여겨지던 시점이었다. SM의 동방신기도 일본 시장, 슈퍼주니어는 중국 시장에 더 타깃을 맞춰 활동했고, 비와 이효리로 대표되는 섹시한 콘셉트의 남녀 솔로 가수가 정상에 올랐다. 마치 스파이스걸스와 TLC의 시대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시대로 흘러갔듯, 가요계의 트렌드도 팝의 흐름을 실시간에 가깝게 좇아가는 형태였다.


특히 SG워너비를 비롯한 미디엄템포R&B가 싸이월드를 비롯한 음원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너도나도 ‘소몰이’로 울어 싸던 상황에 댄스를 기반으로 한 걸그룹은 모험에 가까웠다. 씨야처럼 울어제끼는 걸그룹이 훨씬 상품성이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더걸스 데뷔 싱글 ‘Irony’는 JYP엔터테인먼트 최초의 걸그룹이라는 마케팅 이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초라한 흥행을 거뒀다.


SM을 연상시키는 엘리트 아이돌 이미지의 세련된 스쿨룩 비주얼과 최신 R&B에 비중을 둔 ‘Irony’의 미흡한 성과에 영민한 프로듀선 박진영은 재빨리 변신을 추구했다. 이미 본인이 성공해 본 방식이었다. H.O.T.나 젝스키스, 신화 등 선배 아이돌들이 기성세대와 싸우는 전사, 10대들의 우상 같은 이미지였다면 JYP의 god는 친근하고 때론 찌질한 동네 형이나 오빠 아니면 나 자신의 거울이었다. MBC ‘god의 육아일기’는 그러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원더걸스의 후속작이자 국민가요로 등극하는 ‘Tell me’도 마찬가지였다. 멤버들이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보고 “창피해서 울었다”고 할 정도로 촌스러운 복고풍 이미지에 누구나 따라부르기 쉽고 귀에 꽂히는 중독적인 후렴구의 1970년대식 디스코 리듬의 ‘뽕끼’는 세대를 아우르는 파괴력을 불러왔다. 2007년 ‘Tell me’와 함께 가요계의 양대산맥이었던 빅뱅의 ‘거짓말’이 10-20대에 치중한 인기였던 반면 ‘Tell me’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국민가요’의 반열에 올랐다.


유치원생도 제법 따라 출 정도로 무난한 난이도의 ‘꼭짓점 춤’은 초기 SNS 태동과 함께 UCC를 한국에 전파 시킨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나!”를 외친 소희는 ‘국민 여동생’이 됐다. ‘Tell me’의 거대한 성공은 소몰이 창법의 시대를 끝내고 2세대 아이돌의 개막을 알렸다. 1996년 1세대 아이돌의 개막을 알린 ‘캔디’의 11년 만의 재림이었다. 빅뱅과 카라, 후발주자인 소녀시대, 2NE1, 2PM,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이 다시금 아이돌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꼭짓점’이 됐다.


2 Different Tears: ‘미국병’으로 끝나버린 전성기


원더걸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는데, 2008년 여름 ‘So Hot’과 가을 ‘Nobody’까지 3연속 히트하면서 가요계에 적수가 없어진 것이다. 언론에서 한창 라이벌로 묶었던 소녀시대도 이때까지는 사실상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피부만 황색일 뿐 몸 안은 온전히 흑인”이라는 박진영의 ‘미국병’이 도지면서 원더걸스의 전성기도 끝나고 소녀시대와의 경쟁 구도도 완전히 역전되었다.


미국 진출 초기는 박진영의 소위 ‘언플’과 함께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어로 번안한 ‘Nobody’는 싱글차트인 빌보드 Hot100에 76위로 진입해 한국 가수 사상 최초의 역사를 썼다. 앨범차트인 Hot200에 처음 진입한 보아에 이어 빌보드 메인차트에 진입한 두 번째 한국 가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도 허울뿐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Nobody’ 싱글은 CD 가격을 1달러 이하로 떨이 판매하며 옷 가게 등에서 끼워팔기로 판매량을 높여 차트인 한 결과물이었다.


신인이 척박한 미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면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후속 활동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으면서 그야말로 원더걸스의 미국행은 ‘흑역사’로 끝나고 말았다. 2010년 나온다던 정규 앨범은 끝내 발매되지 않았고 심신이 지친 막내 선미는 그룹을 떠나고 만다. 대신 들어온 혜림은 악플에 시달려야 했고 국내에서는 ‘Gee’의 폭발적인 인기로 이미 원더걸스의 자리는 소녀시대가 차지하고 난 뒤였다. 심지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제와 대중음악계도 휘청이던 때였다. 안과 밖 모두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지금처럼 아이돌 팬덤이 굳건하지도 않았던 때 섣부른 ‘미국 올인’ 전략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원더걸스의 존재감을 지워버렸다. 이후 원더걸스는 꾸준히 활동하였고 히트곡도 내놓았으나 ‘Tell me’에서 ‘Nobody’로 이어지는 2007-08년의 짧은 전성기는 결코 재현하지 못했다. 훗날 선미가 “과거의 자신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미국에 가지 마라’고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패착이었다. "JYP 때문에 기뻐서 울었고 슬퍼서 울었던" ‘2 Different Tears’가 원더걸스 자체를 상징하는 노랫말이 되고 말았다.


박진영이 끝내 당도하지 못한 미국 시장이라는 ‘엘도라도’는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본인도 실패라고 인정한 바로 그 해, 자신을 ‘쌈마이’로 지칭하는 뚱뚱한 아저씨가 열어젖힌다. 그리고 대중음악계의 진정한 ‘쌈마이’들로부터 그 성공 신화는 시작된다.


원더걸스 'The Wonder Years'(2007)


1. I wanna


2. 이바보


3. Tell me


4. Friend


5. Headache


6. 뭐 어때(Feat. David Kim)


7. Wishing on a star


8. Move(Feat. 이민우 MRISING)


9. 가져가


10. Good bye


11. Bad boy


12. 미안한 마음


13. Ir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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