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명헌] No.1

[케이팝 명반 헌터스] 5. 보아 'No.1'

by 간지훈

H.O.T.의 중국 시장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이수만의 시선은 세계 제2의 음반시장을 갖춘 일본으로 향했다. 1997년 H.O.T.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친 걸그룹 S.E.S.가 그 선봉장이었다. 그룹 결성부터 해외 시장을 노리고 영어에 능통한 유진, 일본어가 자유로운 슈(거기에 중국어가 자연스러운 티티마 소이까지 4인조 구성이 원안이었다)를 멤버로 한 만큼 일본 시장 도전은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S.E.S.의 일본 침공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다시금 만 14세의 어린 소녀를 내세워 2차 침공에 나선다. ‘new World’로 ‘Jumping’하는 바로 보아였다.


아시아의 별이 되다


S.E.S.의 실패 원인 중 하나가 일본 내 기획사 문제였다는 점을 간파한 SM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초대형 기획사 에이벡스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고 보아의 일본 시장 진출에 돌입한다. 에이벡스는 보아를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에 능통하고 춤과 노래가 완벽한 천재 가수’로 이미지 메이킹했다. ‘신동’ ‘천재’에 열광하고 영어에 능숙한 것을 선망하는 일본인의 특성에 적합한 마케팅이었다.


하지만 배타적인 일본의 음반시장은 결코 보아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계은숙과 조용필 등 엔카를 기반으로 한 트로트의 향취가 물씬한 성인 가수만이 일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거두었을 뿐 천하의 서태지도 한국어로 음반을 냈다가 철저히 외면받은 곳이 일본이다. 보아는 2001년 5월 전년도 한국에서 발표한 데뷔 앨범 타이틀 곡 유영진의 ‘ID;Peace B’를 일본어로 번안한 첫 싱글을 냈고 동년 7월에 두 번째 싱글 ‘Amazing Kiss’를 발표했다. 두 싱글은 합산해서 10만 정도 나갔다. 투자한 것에 비하면 결코 만족할 만한 수치는 아니었다.


마침내 터진 것은 한일 양국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붐이 일기 시작한 이듬해 봄이었다. 일본 네 번째 싱글이자 첫 정규 앨범 타이틀 ‘LISTEN TO MY HEART’이 발매 첫 주에만 23만장이 팔리면서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위클리 1위에 오르는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 이 앨범은 일본레코드협회 인증으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며 ‘한류’라는 신조어를 일본 음반시장에 최초로 각인시킨다.


보아는 이제 아무로 나미에나 하마사키 아유미 등 J-POP 거물들의 후계자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데뷔 초 H.O.T.나 신화 등 같은 소속사 남자 아이돌 그룹 팬들에 이유 없이 미움을 받고 일본 시장에서의 행보도 과소평가 받기 일쑤였던 이제 열 다섯의 소녀는 일본 진출 1년 만에 열도를 점령하고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역진출에 나선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반도를 뜨겁게 달구던 그 해 여름, 금의환향한 보아의 ‘No.1’이었다.


일본 점령, 한국 제패 그리고 미국 도전


H.O.T.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5집이 발표되던 2000년 데뷔 앨범을 내놓으며 한 시대가 가고 밀레니엄의 새 주자로 세대교체의 주역임을 확인받았던 보아는 일본에서의 혁혁한 성공 이후 2년 만의 국내 두 번째 앨범 ‘No.1’으로 마침내 한국에서도 ‘넘버원’의 자리를 차지한다. 원래 보아의 정규 2집 앨범 타이틀은 귀여운 15살의 여자 아이돌 느낌의 유영진이 쓴 ‘My Sweetie’였다. 하지만 ‘LISTEN TO MY HEART’의 거대한 성공으로 현 시점 보아에 가장 적합한 콘셉트가 무엇인지 깨달은 제작진은 급박하게 스웨덴 작곡가 Ziggy의 유로팝 ‘No.1’을 타이틀로 바꾸어 편곡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앨범을 발매한다.


해외 스타가 한국에서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듯한 묘한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2년 전과 판이한 무대매너와 퍼포먼스를 선보인 보아의 ‘No.1’은 50만장이 넘는 판매고로 보아 국내 앨범 중 최다 판매를 기록했으며 보아에게 유일한 연말 시상식 대상인 SBS ‘가요대전’ 대상과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안긴다. 시상식 당시 보아는 겨우 만 16세 1개월로 아직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깨지기 어려운 역대 최연소 대상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LISTEN TO MY HEART’과 ‘No.1’ 그리고 하반기에 발표한 ‘Valenti’로 한일 양국에서 2002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보아는 2008년까지 7장의 앨범을 연속으로 오리콘차트 1위에 올려 일본 역대 여가수 3위라는 위업을 달성하고 새로운 시장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다. 2009년 3월 발표한 첫 미국 정규 앨범 ‘BoA’는 발매 첫 주 앨범 차트인 빌보드200에서 127위에 오르며 한국인 최초 메인차트 등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달성한다. 일본에 이어 미국 시장까지 ‘선구자’로서의 보아의 행보가 다시금 주목받을 만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 정규 1집 리패키지 ‘BoA Deluxe’를 발매하던 때, 당대 SM의 최고 히트 상품이었던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사태가 터지면서 보아의 미국 활동도 물거품이 되었다. 한국에서 2005년 발표한 정규 5집 ‘Girls On Top’ 이후 5년이나 공백기를 가지면서 커리어의 최종장이 될 만한 미국 시장에의 도전은 실패라고 단정짓기엔 성과가 없진 않았으나 아티스트 본인에게나, 팬들에게는 아쉬움만 남는 기억에 머물고 말았다.


물론 그들과 달리 보아와 미국 시장 진출을 놓고 ‘최초’ 타이틀을 다투던 고릴라를 닮은 한 남자에게는 보아의 미국 활동 중단이 더없이 반가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보아 ‘No.1’(2002)


1. No. 1


2. My Sweetie


3. 늘.. (Waiting..)


4. Tragic


5. Shy Love


6. Day


7. dear my love..


8. 난 (Beat it!)


9. P.O.L (Power Of Love)


10. My Genie


11. Pain-Love


12. Happiness Lies


13. Realize (Stay With Me)


14. Azalea


15. Listen to my Heart (Bonus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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