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명헌] We are the Future

[케이팝 명반 헌터스] 4. H.O.T. 'We Hate All...'

by 간지훈

현진영 필로폰 사태로 좌초 위기에 빠진 SM호는 주력 프로듀서였던 홍종화마저 떠나면서 마지막 결단을 내리게 된다. 회사의 운명을 걸고 선장 이수만은 ‘그대의 향기’를 히트시킨 가수 유영진을 홍종화의 대체자로 삼아 10대 아이돌 그룹에 전력을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듀스의 김성재가 사망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하며 주인공이 사라져버린 대중음악계에서 SM엔터테인먼트 나아가 K-Pop의 명운을 짊어지게 될 다섯 명의 소년이 1996년 가을 무대에 오른다.


이태원 클럽에서 롯데월드로


이태원 클럽에서 선발한 현진영 사단이 마약으로 몰락하자 SM엔터테인먼트의 시야에 포착된 새로운 댄스 아이돌의 성지는 강동이었다. 현진영이 구속된 이듬해 오금중학교 3학년생이던 강타는 롯데월드 인근 거리에서 춤을 추다 SM 캐스팅디렉터 김경욱의 명함을 받고 SM에 합류한다. 롯데월드에서 주최한 청소년 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한 장우혁도 김경욱이 캐스팅했고 ‘문정동 노란 반지’로 유명했던 문희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반 기획과 제작은 이수만, 작곡은 유영진, 엔지니어링은 허정회, 안무는 박재준, 캐스팅과 조련은 김경욱, 매니지먼트는 정해익으로 시스템을 갖춘 SM엔터테인먼트는 없는 살림에 조악한 사운드 퀄리티로 급박하게 H.O.T. 1집을 발매한다. 현진영 이후 내놓았다 실패한 아이돌 듀오 J&J의 ‘노을 속에 비친 그대 모습’과 ‘미지수야 미지수’를 이름만 바꾼 ‘ABOUT 女子’로 곡 수를 채워야 할 만큼 H.O.T.의 데뷔 앨범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는 완성도에 있어서 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1996년 9월 7일 데뷔 앨범이 발매되던 당일 저녁,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이기도 했던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통해 첫선을 보인 H.O.T.에 대한 반응은 ‘난 알아요’처럼 뜨겁지는 않았다. 데뷔 당시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17.2세에 불과하다는 게 특이했을 뿐(4년 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때 이주노가 이미 20대 중반이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 수준인), 전년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정규 앨범 타이틀곡 ‘Come Back Home’의 영향을 받아 갱스터랩에 학교 폭력 문제를 가사에 담은 데뷔곡 ‘전사의 후예(폭력시대)’는 당시 가장 대표적인 가요순위 프로그램이었던 KBS ‘가요톱10’에서 최고 순위 8위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표절 논란 덕에 국민 아이돌 되다


이 때 운명처럼 표절 논란이 터졌다. 미국 힙합 그룹 사이프레스 힐의 ‘I Ain’t Goin’ Out Like That’의 랩 스타일과 플로우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지적이었다. 이 밖에도 미국 래퍼 닥터 드레가 프로듀스한 래퍼 스눕 독의 ‘Deep Cover’, 힙합 트리오 너티 바이 네이처의 ‘It’s workin`’ 등도 그대로 따 왔다는 시비가 일었다. 물론 서태지도, 이현도도 레퍼런스와 샘플링 등에서 논란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가요계는 표절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던 게 결정적이었다.


1995년 ‘날개잃은 천사’로 SBS ‘가요대전’에서 혼성그룹 최초로 대상을 받으며 ‘포스트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의 주역이 될 것 같았던 룰라는 3집 타이틀 곡 ‘천상유애’가 일본 아이돌 그룹 닌자의 ‘오마쓰리 맘보’를 표절한 것이 인정되면서 리더 이상민이 자살 소동을 벌일 정도로 홍역을 치렀다. 같은 해 가수 커리어 중 최전성기를 맞았던 김민종도 ‘귀천도애’가 일본 록밴드 튜브의 ‘Summer Dream’과 일본 대표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를 표절한 것을 인정한 후 가수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이 와중에서 갓 데뷔한 신인이 표절 의혹을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현진영의 마약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표절로 SM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이 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데뷔 두 달 만에 활동곡을 바꿔야 했던 H.O.T.에게는 오히려 표절 논란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전사의 후예’를 대신한 후속곡이 바로 ‘캔디’였기 때문이다.


단대부고 재학 시절부터 음악 신동으로 유명했던 작곡가 장용진은 이미 H.O.T. 멤버로 제안받았던 인물이다. 문희준, 장우혁, 토니 안과 동갑인 그는 H.O.T.로 활동하는 대신 고교 2년 때 만들어놓은 노래 ‘캔디’를 건네고 가수가 아닌 작곡가의 삶을 살기로 한다. ‘전사의 후예’의 어둡고 강렬한 이미지 대신 털옷과 털모자, 털 가방으로 10대 특유의 귀여운 콘셉트로 변신을 꾀했고, 볼에 멤버들의 상징 컬러를 칠하고 의상마다 멤버를 상징하는 고유의 번호를 매기는 등 아이돌 스타일을 구축한 이수만의 전략도 적중했다.


1996년 겨울은 H.O.T.와 ‘캔디’의 독무대였다. ‘가요톱10’ 2주 연속 1위를 비롯해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3주 연속 1위, SBS ‘TV가요20’ 6주 연속 1위로 지상파를 통일했고, KMTV ‘쇼 뮤직탱크’ 5주 연속 1위와 아이돌 그룹 최초이자 1세대 아이돌 중 유일한 200만장이 넘는 판매고로 훗날 라이벌로 대두하는 젝스키스 등의 후발주자 양성 붐을 일으키면서 대중음악 시장 자체를 완전히 10대 아이돌 그룹 세상으로 패러다임 전환 시켰다.


1998년 중국에서 최초로 정규 음반을 발표한 한국 가수가 된 H.O.T.는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류’라는 단어를 최초로 이끌어낸다.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가진 이수만은 이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음반시장인 일본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이제 20대에 이르렀고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아이돌로서의 수명도 오래 남지 않은 H.O.T.가 그 주역이 될 수는 없었다. 이수만의 새로운 카드는 문희준이 H.O.T.로 데뷔했을 때보다도 무려 4살이나 어린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여자아이였다.


H.O.T.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1996)


1. Candy (캔디)


2. 널 사랑한 만큼


3.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


4. 노을 속에 비친 그대 모습


5. 내가 필요할 때 (소년, 소녀 가장에게)


6.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


7. 너는 Fast 나는 Slow


8. 개성시대


9. About 여자(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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