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의 기분

9월, 술 먹기 좋은 날, 시작일기

by 이수연

나는 지금 태어났지만

노견의 기분


망막은 낯설고

전등이 꺼질 것 같아


잠자는 얼굴

오래 들여다본다


감긴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보여


네가 닳는 것이 싫다


조용히 잠들어

깨지 않는 것이 싫다


나의 체온은

너보다 따뜻해


모기는 너를

물지 않을 테지


빛이 선을 긋는다

오후의 일이었다







이별의 능력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 있는데

내장이 연통이 되는데

피가 끓고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든 안개를 거느리고 이민을 떠나는데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새들이 큰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몰고 갔어.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알게 돼.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건 구름. 당신의 지팡이.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간 냄새가 사라지는데

나는 옷을 벗지. 저 멀리 흩어지는 옷에 대해

이웃들에 대해

손을 흔들지.



-김행숙,「이별의 능력」



김행숙 시인


벌어진 커튼의 입을

빨래집게로 막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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