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나였다

경기 전세의 중소기업 다니는 전과장 이야기

by 심취한홍보맨

1990년 겨울, 여수의 작은 군인 아파트.
바다 냄새와 기름 냄새가 뒤섞인 부둣가에서는

매일처럼 값이 없다는 이유로 고등어가 산처럼 쌓여 버려졌다.


어머니는 그 버려진 고등어들을 비닐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져와 식탁을 채웠다.
가난했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알뜰살뜰하게 하루를 버티던 부모님 밑에서 나는 그렇게 자랐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우리 가족을 완전히 흔들어 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새벽 당직을 마치고 귀가하던 아버지는 군 동기와 후임 장교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언제나 조수석에 앉았던 아버지는 그날따라 동기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 선택이, 인생을 바꾸는 갈림길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귀가하던 중, 중앙선을 침범한 덤프트럭이 택시와 정면 충돌했다.
앞좌석의 택시 기사는 즉사했고, 아버지의 동기는 중태에 빠졌다.


의식을 잃었던 아버지는 불길 속에서 정신을 차렸고,

스스로 빠져나오려 했지만 왼쪽 허벅지 뼈는 산산조각 나 있었다.

사고 지점이 우연히도 소방서 인근이었기에

소방대원들이 즉시 도착해 화재를 진압하고 아버지를 밖으로 끌어냈다.
죽음과 생사의 경계에서, 아버지는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그 시각, 만삭의 어머니는 병원으로 달려가며

내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고 한다.

불안과 공포에 몸을 떨면서, “이 아이만은 무사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결국 출산의 순간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나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불안과 긴장 속에서 숨을 들이마신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유난히 소심했다.
겁이 많았고, 힘도 약했다.

누가 조금만 목소리를 높이면 가슴이 쪼여들었고,

사소한 실수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안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았다.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전과장"이라고 부르기라도 하면

겁부터 생기곤 한다.


사실 군인의 자녀로 산다는 건 정착이 없다는 뜻이었다.

유년기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매년처럼 이사를 다녔고,

늘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그건 내게 너무 힘들었다.

학업 성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형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다양한 공부를 했지만,
나는 형이 풀었던 낡은 문제집과 학습지를 물려받아 쓰는 아이였다.
언제나 한 발 늦고, 어쩐지 따라잡지 못하는 기분.
그런 열등감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 나에게,
“너는 불길 속에서 살아 돌아온 내 인생의 뜻이다”
아버지가 건넨 한 마디는
삶 전체를 떠받치는 무게와 책임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여수의 부둣가 냄새 속에서 자란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홍보 에이전시란 00커뮤니케이션의 문을 처음 열게 된다.


“고등어 냄새가 나는 아이가 자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멋진 빌딩 안의

사무실까지 왔다. 이제는 내가 내 냄새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