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홍보맨이 된 계기
2013년, 박근혜 정부 중반.
텔레비전을 켜면 매일같이
'청년 취업난', '스펙 전쟁', 'N포 세대'라는 단어가 쏟아졌다.
친구들은 토익, 자격증, 대외활동, 공모전으로 하루를 채우며
취업 준비 학원과 독서실, 카페를 전전했다.
나는 느지막이 밤을 새우고, 아침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취업 포털의 ‘지원하기’ 버튼을 기계적으로 눌렀다.
200장이 넘는 이력서.
대부분의 회사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가끔 도착하는 연락은 연봉 2,300만 원의 잡무 포지션이었고,
면접장은 하나 같이 “힘든 일부터 해볼 자신 있느냐”고 물었다.
지하철 손잡이를 붙잡고 돌아오는 길,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점점 초라해지고 있었다.
눈 밑에 내려앉은 그림자, 굳어버린 입꼬리,
그리고 마음속에 스며든 질문.
“내가 잘못된 길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꿈에서나 보던 이름.
“00커뮤니케이션 채용팀입니다. 서류 합격하셨습니다.”
순간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한참 동안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내가 찔러보기 식으로 넣었던 그곳.
국내 최고라 불리던 홍보대행사.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회사.
하지만 사실 00커뮤니케이션은 처음이 아니었다.
군 전역 직후,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3개월 동안 퀵 심부름, 서류 정리, 이벤트 지원,
그리고 사수 뒤를 쫓아다니며 세상의 공기를 배웠던 곳.
당시 나는 생애 첫 사무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매일 설렜고,
선배가 “같이 밥 먹을래?”라고 부르면
그 말 한마디에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해했다.
그러다 2012 여수 세계박람회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뜨자
고향에서 일할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캐리어 하나 끌고 내려가 00커뮤니케이션을 떠났다.
내가 떠나는 그 순간, 누구도 이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연을 스쳐 지나가듯 끝난 인연이었다.
그 인연이 1년 뒤 서류 자동 합격이란 보너스로 돌아올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했다.
00커뮤니케이션의 면접 방식은 유명했다.
스펙보다 존재감,
이력서보다 버티는 힘,
그리고 머리보다 태도를 본다는 소문.
슈퍼스타K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면접장 분위기 역시 오디션 무대 같았다.
합격자는 눈에 띄는 사람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집으로 돌아갔다.
면접장 안에서는
나를 제외한 모든 지원자가
능숙하고 완벽해 보였다.
공모전 수상, 글로벌 대외활동, 해외 경험.
게다가 모두 말도 잘했다.
하지만 내게 들어온 질문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다시 00커뮤니케이션 오니까 기분 어때요?”
“술은 잘 마시냐?”
“노래는?”
“홍보를 왜 하고 싶어요?”
나는 준비했던 답변을 하나도 펼치지 못하고
그저 솔직하게 말했다.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세상과 연결된 곳이었거든요”
면접관들이 웃었다.
긴장이 풀렸고
나는 처음으로 진심을 꺼내놓았다.
최종 면접에서도
대표이사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고
본부장급 몇 명이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버틸 자신 있어요?”
“다시 떠날 일은 없죠?”
“버티러 왔습니다”
며칠 후,
합격 전화가 왔다.
생애 첫 명함을 받던 그날,
하얀 종이 사이로 적힌 내 이름이 손끝을 떨리게 했다.
SNS에 사진을 올리자 축하 댓글이 쏟아졌다.
“너 진짜 멋지다” “대단하다” “부럽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이 나를 향해 열리고 있다고 믿었다.
“이 기운, 오래갈 줄 알았다”
내가 배정된 팀은
남자 팀장 1명, 여자 사수 4명, 그리고 나.
매일 아침
팀장 자리로 불려가 혼났다.
사수들은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면서도
모자란 아이 다루듯 대했다.
어느 금요일 퇴근 직전,
사수 한 명이 물었다.
“다음 주 월요일… 출근은 할 거지?”
그 질문은
따뜻한 배려가 아니라
너, 도망칠 거지? 라는 경계였다.
팀장은 매일 말했다.
“메이저 신문 1면 필사해와”
나는 손으로 기사를 옮겨 적었고
옥상 난간에 기대어
팀장과 줄을 맞춰 읽었다.
기사 구조, 프레이밍, 단락, 문장 호흡.
지금 시대라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됐겠지만
그때는 그냥 버티는 게 답인 시대였다.
나는 매일 무너지고
다음 날 다시 출근했다.
2년 반 동안.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
눈물이 차오르다 간신히 삼켜지는 아침들.
“나는 왜 이토록 부족한 사람인가”
2년 반을 버티던 어느 날
팀장이 모시던 기업 홍보팀 막내에게 연락이 왔다.
“이직 생각 있으세요? 막내 자리 하나 납니다”
나는 도망치듯 그 기회를 붙잡았다.
팀장급조차 상상할 수 없던
비상장사의 홍보실.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살아남고 싶었다”
그 선택이
훗날 8번의 이직을 향한
긴 터널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선택은 책임이다” 그 말을 곧 알게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