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손>을 보고
넷플릭스에 있는 <장손>을 짝지가 보자고 했을때, 뭐 뻔한 가부장제를 풍자하는 내용의 재미없는 영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넘어갔었다. 그러다 부너미의 이마사라쌤이 <장손>이 괜찮은 영화라고 추천했던게 생각이 나서 짝지랑 같이 보기 시작했다.
근데 보자마자 생각이 달라졌다. 미장센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너무 많았다. 3대 가부장제를 다루지만 식상하지 않고 리얼하게 다가왔다. 대사는 현실적이었고 연기도 담백했다. 어느 집에서나 있을법한 일이지만 갈등이나 충돌을 과장해 다루지 않았다.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인물들이 다 자기 사정이 있었고 시대적 아픔도 함께 다루고 있었다. 가부장제는 여성들만이 피해자가 아니라 결국 남성들에게도 억압의 제도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모든 인물들이 가부장제로 인해 뒤틀리고 억눌려 있었다.
주인공은 성진. 서울에 올라가 배우일을 하지만 밥벌이도 어려운 무명배우 신세이다. 그래서 이번엔 자기영화를 만들겠다고 보증금을 땡겨 쓴 모양이다. 성진은 할머니의 편애를 유독 받았다. 두부공장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기대가 부담스러워 원가족과는 거리를 두고 싶을 뿐이다. 어머니 또한 가부장제가 지긋지긋해서 자신의 아들이 서울에서 어떻게든 지내길 바랄 뿐이다.
첫 장면은 제사 지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사인걸까? 할머니 말녀는 손녀딸이 에어컨을 켜자는 말에는 선풍기방향만 돌리지만 귀한 손자가 왔을때는 집에오자마자 에어컨을 켜버린다. 요즘은 다들 제사를 일찍 지내는데 유독 이집만 할아버지 승필의 고집으로 밤 12시에 지내고 있다. 누나 미화의 재촉으로 성진은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일찍 지내자는 말을 꺼낸다. 멀리서 고향에 와서 제사를 지내는 가족중에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살아있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위해 12시에 지내야 한다고 승필은 고집을 피우는 것일까.(투덜투덜되면서 일찍 지내라고 하긴 한다.) 나도 아주 오래전에 큰집(아버지의 형님)에서 제사를 지낼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젓가락을 세번 바닥에 치고 반찬 위에 올려두는 모습, 숟가락으로 밥을 세번 퍼서 물에 마는 장면. 절을 올리고 난후 조상귀신들 식사하시게 불을 끄고 조용히 기다리는 장면 등등.
아버지쪽 제사에서는 늘 아버지는 부재했다. 내가 12살때까지는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서 부재했고, 그 뒤에는 대순진리회 단체 활동을 한다고 부재했다. 어머니는 늘 큰 집 제사에 가면 똥씹은 얼굴이었고, 다녀오고 나면 일주일은 끙끙않았다. 대체 저렇게 아버지를 싫어하면서 왜 큰집 제사에 가는지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고 나는 큰집 제사에 더이상 가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선언을 했고 엄마도 그뒤에 혼자 몇번 다니더니 엄마도 가지 않게 되었다.
그 다음 장면은 할머니 말녀가 돌아가고 장례식 장면이다. 가족들이 장례식 이후 조의금을 나누는 장면이 웃픈 장면이라 인상적이었다. 가족마다 그 조의금을 처리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아직까지는 우리가족안에서 장례를 치른적은 없다) 자기몫으로 온 조의금을 나눠가지는 방식이 합당하다 싶었다. 나는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혼식과 장례식을 가지 않는 편이라 조의금 축의금을 회수해야한다는 인식은 없는 편이다.
성진에게 큰 고모 헤숙은 특별하다. 혜숙과 고모부는 자신에게 부모역할을 해주는 존재였나 보다. 성진의 아버지 태근은 아버지(승필)의 기대로 법대를 갔지만 그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다리를 절게 된 것 같다. 법대를 졸업하고 가족을 일으키진 못하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두부공장을 잇게 되었다. 하지만 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책임있게 하지 못하고 술을 먹으면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다. 성진의 학교행사에 아버지 대신에 가다가 고모부는 사고를 당하고 그 뒤로 식물인간으로 지금까지 병원에 있다. 혜숙은 하나님을 믿으며 그 힘든 시간들을 버티며 살아온 인물이다. 혜숙도 두부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자신의 임금을 말녀에게 늘 맡겼던 것인데 말녀가 돌아가시고 나니 자신의 노후(남편의 앞으로의 병원비)가 걱정이 되었던지 말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말녀의 방을 뒤진 것 같다. 영화는 정확한 설명은 없고 성진이 우연히 본 것으로 나온다. 성진은 누나(미화)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태근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다.(말조심의 필요성!!) 말녀가 돌아가시고 나니 말녀에게 돈을 맡긴 계원들이 집에와서 그 돈의 행방을 물으러 왔다. 태근은 그 돈을 나도 모른다고 답답해 했다. 태근은 자신의 누나인 혜숙에게 그 돈 어딧냐고 화를 낸다.
혜숙의 시골집이 한밤중에 타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성진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근이 술김에 저지른 일 아닐까 의심이 되었지만, 큰 고모(혜숙)랑 대화를 나누니 어쩌면 큰 고모가 자신의 집을 태운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혜숙에게도 원가족이 지긋지긋했을 것 같다. 받은 것 없이 늘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남편의 간병으로도 힘든데 태근이 자신이 돈을 가져갔다고 화를 내니 억울했을 것 같다. 시골집을 태운 행위는 어쩌면 이 원가족과 선을 긋겠다는 단호한 선언은 아니었을까 싶다.
말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할아버지는 더욱더 기운이 없고 한번씩 엉뚱한 말을 한다. 치매인걸까. 영화 마지막에 성진이 서올로 돌아가는 길에 승필은 손자에게 비닐봉지 하나를 주어준다. 두부인줄 알았더니 통장이었다. 성진앞으로 모아두었던 통장. 택시안에서 통장을 한장한장씩 넘기는데 5000만원까지 보였준다. 5000만원이상일지도 모른다. 성진은 이 돈을 어떻게 쓸까. 성진의 미래도 불투명하고 이 돈은 다른 가족구성원 모르게 자신에게만 준 것이니 입을 닦아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큰 고모가 돈을 가져갔다가 오해를 받았고 시골집까지 태운 것이 자신 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큰 고모는 남편 간병비가 언제나 부족하다. 그 돈을 큰 고모에게 줄까. 일부라도 줄까? 그러기엔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도 없다. 나같아도 큰 고모에 대한 부채감이 있을지라도 나의 생계비로 쓸 것 같다. 서울에서 배우 생활하는 것이 언제 빛을 바랄지 모른다. 할아버지가 준 돈으로 서울에서의 배우 생활을 조금더 길게 가져가지 않을까. 성진은 배우의 꿈을 계속 가질지 고민중일 것이다. 배우 일을 하며 언제 안정적인 생활을 할수 있을지 장담은 할 수 없다. 서울생활에 지쳐서 결국 고향으로 돌아올수도 있다.
한국에는 안락사나 조력사라는 제도가 없다. 그리고 안락사나 조력사를 하려고 해도 환자의 의사가 있어야 가능한데 남편은 의식조차 없다. 의식이 없는 남편을 늘 간병해야 하는 혜숙의 삶이 참 무겁게 느껴진다. 종교의 힘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
여러 인물들중에 제일 마음에 가는 사람은 성진과 작은 고모인 옥자이다. 둘다 원가족과 어느정도 거리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원가족과는 어느정도 거리감을 적당히 두는게 바람직하다 생각하는 편이다. 옥자는 남편의 사업으로 인해 베트남으로 가게 된다.
영화 마지막은 롱테이크로 승필이 성진을 배웅하고 난뒤 집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길 멀리까지 걸어가는 장면이다. 자신의 집 방향을 못 찾아서 일수도 있고,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으로도 해석할수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나면 이제 제사를 지내는 일도 사라질 것이고, 두부공장은 미화(성진의 누나)와 미화 남편 재호와 수희(성진의 어머니이자 태근의 아내)가 운영하지 않을까. 태근은 술을 더 자주 먹게 될것으로도 보인다.
영화 마지막에 승필의 부모님이 한국전쟁당시 민간인 학살을 당한 것으로 밝혀진다.(나의 외할버지도 엄마가 1살때 보도연맹으로 돌아가신 것을 40대가 되어서야 엄마에게 들었다.)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홀홀단신으로 살아온 승필의 삶도 참 구슬프다. 혼자서 가문을 잇기 위해 부단히 애쓴 것이 자부심이자 한편으로 고집이지 않았을까. 태근은 자신의 아버지인 승필에게 두부공장을 왜 자신의 매형에게 맡겼는지 울분으로 물어본다. 태근의 마음은 자신의 아들은 서울가서 출세해서 화이트칼라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이런 허드렛일은 매형에게 맡기고 말이다.
등장인물들은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면서도 완강하게 거부하지는 못하는 인물들이다. 다들 일정부분 뒤틀려 있고 억눌려 있다. 더이상 남성들의 혈통을 잇는 제사라는 제도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다.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나면 가족들을 모이게 하는 제사라는 제도는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게 서운하지 않고 반갑다. 구성원들을 억압하는 전통이라는게 대체 누구를 위한 전통일까라는 것이다. 가족은 꼭 화목해야 하는가. 전통은 예전부터 이어져 왔기에 계속 이어져야만 하는 것 일까. 자라오면서 화목한 가정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나이다보니 가족에게 기대하는 것은 없는 편이다.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선에서 가족의 일에 참여하면 충분한 것 같다. 성진이 할아버지에게 받은 돈을 가지고 서울에서 이왕이면 5년, 10년정도 배우일을 하며 더 버텨봤으면 싶다. 그 돈의 출처가 어디일지 더이상 묻지 말고, 부모에 대한 부채감과 고모(부)에 대한 부채감은 좀 내려놓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좀 더 해봤으면 싶다. 10년정도 해도 힘들다면 과감히 배우일을 단념하고 서울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던지, 아니면 고향에 놀아와 두부공장일을 돕던지. 그런데 10년 뒤면 그 두부공장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부채감이나 죄책감은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수준만큼만 짊어졌으면 싶다.
이렇게 3대 대가족은 해체되었지는 모르지만, 그게 작은 가족(개인)의 출발일지 몰라서 씁슬하지만 영화의 엔딩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