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후기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조승리 에세이)
요즘은 책을 괜찮게 읽었다고 꼭 후기를 남기는 편은 아니다. 다만 자크르에서 하는 작가님의 북토크에 가도 내가 혼자 독점해서 감상을 말씀해드리고 질문을 다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작가님에게 하는 말이라 생각하고 적어보면 좋겠다 싶어 키보드를 켰다.
괜찮게 책을 읽으면 종종 작가님의 그림을 그려 작은 액자에 넣어 북토크에서 선물로 드리곤 했다. 그런데, 시각장애가 있는 작가님에게 그림 선물을 드리는게 실례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속의 여행 에피소드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림 선물을 해드려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림 선물을 드리면 주변 지인들이 그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 줄 것이고,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을 읽고 자신을 정성껏 그렸다는 사실에 온전히 기뻐하실거 같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작가님에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이 생겨 검색을 해봤다. 여둘톡에 출현하신 팟캐스트도 듣고, 라디오에 출현하셔서 인터뷰하신 내용이 유투브에 있어 들어보았다. 경향신문에 연재를 하신다고 해서 에세이칼럼 세편도 재미있게 읽었다. 여둘톡의 인터뷰는 작가님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그러면서 애정과 관심이 듬뿍 담긴 질문들을 던졌다면, 라디오 진행자의 질문들과 반응은 평범하고 좀 무식하다고 해야할까. 특히 아나운서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진행자들의 인터뷰를 들을때면 마찬가지로 느끼는 점이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나 준비를 별로 하지 않고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다양성에 대한 수용감각이 떨어진다고 해야할까. 그게 보통사람들의 시선을 대변하는 반응과 질문이겠지만.
내가 이 책을 좋아하고 작가님의 팬이 된 것은 긍정의 아이콘, 해피엔딩의 결말이어서가 아니다. 책속에는 가난과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분노, 장애로 인한 좌절과 한계에 대한 내용이 툭툭 던져 놓으신다.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면서 그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삶에 대한 적극적인 에너지가 있는 분이다. 자기계발서의 긍정의 서사를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아픔이나 단점, 부정의 이야기를 직면하지 않고 반복하는 긍정의 이야기는 결국 자기문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애써 외면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자기계발서의 긍정 서사는 늘 끊임없이 자기를 관리하고 애쓰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자기 꼴을 직면하고 힘들지만 지난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수용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긍정의 에너지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기 삶을 추동하게 된다. 내가 우울증이 반복적으로 있었던 15살때부터 44살까지, 29년의 삶은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고 관리하는 삶이었다. 애쓰고 노력하지만 언제다시 무기력해질지 우울증에 빠질지 모르는 불안한 삶이었다. 지금의 나는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고 그 욕구가 커지니깐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하게 된다. 애쓰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그렇구나 니가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구나~ 하고 알아줄 뿐이다. 작가님은 자기긍정의 아아이콘아라기 보다는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살아가는 분이고 그 적극성이 멋지게 느껴진다 .
책에도 그렇고 검색해서 찾아본 글과 인터뷰에도 글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쓰시는지 구체적으로 묘사된 곳은 없었다. 예를 들어 점자 키보드 판으로 쓰면 노트북에서 음성으로 번역을 해 줘서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 확인이 되는 것인지, 편집자가 수정원고 피드백을 줄때는 한글파일로 주는 것인지..그런 작업 과정이 궁금해서 북토크때 물어봐야지 생각했다.
작가님은 꼭 어머니와의 애증 관계에 대해서 소설이든 에세이로든 꼭 풀어주셨으면 좋겠다. 작가님의 어머니는 자녀의 장애가 부끄러우셨다. 창피해서 자식의 졸업식에도 가지 않으셨던 것이다. 책속에는 어머니와 맞담배도 피고 쿨한 모녀관계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렇기도 하지만 내면에는 해소되지 못한 부모에 대한 화가 많을 것 같다. 그 화를 제대로 쏟아내거나 화해하기도 전에 어머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화가 작가님의 내면 안에 깊이 묻혀있다. 그 내용을 글작업하려면 다시 꺼내 보아야 하고 다시 꺼내 보는 작업이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하실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년시절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끄러워하는 부모란 자녀의 내면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고 그걸 넘어서 자기를 긍정하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작가님의 부모님과 작가님이 자라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 또 책으로 만나고 싶다.
안마사라는 직업이 손님과 내밀한 공간에서 둘만의 친밀감과 신뢰감을 바탕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사람들이 작가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기도 하시고, 동료 장애인들과 나눈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워낙 딥한 내용이라 에세이로는 풀기 힘드셔서 소설로 꼭 풀어내고 싶다고 하셨다. 그 꼭이라는 말씀에는 이 사회의 소수자들과 장애인의 삶에 무심한 이 사회와 대중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 딥한 내용들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에세이가 스물일곱번(?)의 거절끝에 출판사를 만난 책이라고 하니 소설은 그 보다 더한 거절을 이겨내야 책으로 엮일수 있을 것이고 작가님은 또 그렇게 하실수 있으라고 생각한다. 짝지가 소설가 이다보니, 이름없는 무명작가가 소설을 책으로 내거나 공모전에 당선되기가 에세이보다 더욱 어려운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설의 이야기는 더 꼭 만나고 싶다.
작가님의 인터뷰중에 또 마음에 든 점은 자신은 안마사가 본업이고 글은 취미로 쓰신다는 점이었다. 나도 나와 짝지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것은 화물차 운전 일이고 글과 그림은 부업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해 작가님이 단단한 사람으로 느껴져 더 반했다. 첫 책이지만, 첫 책의 작가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글의 구성이나 서사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는 글이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생각지도 않게 좋은 반응을 들으셨을 것이고 자꾸 글을 써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글쓰는 삶이라는 것이 어디 쉬운가. 글을 쓰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그러면 안마사 일을 줄이고 써야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단편소설을 쓰고 공모전에 응모해 보지만 글이라는게 자신이 한만큼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일찍 파악 하시고, 일단은 소홀했던 안마사 일을 충실히 하며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하며 계속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으신 점이 좋았다.
작가님은 무엇이든 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각장애인들끼리 여행도 하시고 탱고도 배우고 풀라멩고도 추셨다. 작가님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게 물리적으로 모든 일을 마음 먹기에 따라 다 할수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얼마나 하고 싶냐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크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이 가능한 방법을 찾고 그걸 추구하다보면 결국 하고자 하는 바 근처에 간다는 말씀으로 느껴졌다. 최강야구의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도 자신은 못한다는 생각을 평생 해본적이 없다는 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이라 생각한다. 하고자 바를 분명이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거기에 다달하기 위해 무엇을 공부하고 준비해야하는지 파악하고 그리고 그것에 매진하다보면 그곳까지 다다르게 된다는 말. 플라멩고를 추시다보니 스페인(?)에 올해 혼자 여행가려고 했지만 여행사와 그곳에서 여행을 인도해줄 안내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 일단 내년으로 미루었다고 하셨다. 하려고 하지만 잘 안될때는, 지금은 때가 아니구나 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자세는 울짝지의 태도이기도 하다. 책속에도 시각장애인 이지만, 눈 이외의 감각으로 여행을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비장애인들은 쉽게 보는 감각에만 의존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각 이외의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하는 여행기도 충분히 우리가 간접적으로 체험해볼만 여행기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여행기, 작가님의 성장기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작가님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세권의 책이지 않을까. 본업에 충실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성실히 묵묵히 글을 써서 1년 뒤든, 2년 뒤든 작가님이 써낼 다음 책이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10분의 이동거리를 가기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3시간이 걸려 이동해야 하는 것이 시각장애인의 삶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현실속에서 이 세상과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것들을 자꾸 시도해 보고 자신을 확장해 가는 분이다. 멋지고 매력적인 분이다. 책도 작가님도. 작가님을 뵐 북토크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