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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작가님 북토크다녀오다

생활글이야기

by 박조건형

안희제 작가님 북토크다녀오다


무사이에서 하는 안희제 작가님의 <증명과 변명> 북토크에 다녀왔다. 처음 이책을 읽었을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우진(가명)과 우진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출간이후에도 이야기 하진 않겠다는 작가님의 말에 두분이 걱정이 되고 위험한 기획이 아닌가 싶어 무사이 매니저님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통화를 했었다. 매니저님도 그런 지점들을 북토크에 와서 이야기 나누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참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런 기획을 통해 20대 남성들을 이해보려는 시도보다는 나는 두분의 안전이 더 마음이 쓰였다. 이후에 페이스북을 통해서 우진은 아직 잘살아있고 주식을 통한 자기 증명에서 또 다른 증명으로 옮겨갔다는 소식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2시간동안 책에 담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강연 중간중간 독자들이 적절히 개입해 질문을 해서 깊은 이야기를 2시간 알차게 나누는 시간이어서 너무 좋았다.


원래는 4~6명정도 다양한 층위의 남성들을 섭외해서 질적인터뷰를 하는 기획이었으나 작년초에 우진이 충격발표를 하는 바람에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려보려는 의도로 우진 한명과의 인터뷰로 한권의 책을 구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 남성사회의 문화와 또래문화와 경쟁문화를 내면화한 남성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우진이 자꾸 더 고립되는 것 같았고, 내 우울증 29년의 경험동안 고립되는 것이 무엇인지 징글징글하게 알기에 우진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우진은 또래 남성들과는 달리 이야기를 들을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상당히 다른 두 친구가 우정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매니저님이 북토크 마지막에 작가님에게 ‘우정이란 00이다’ 라는 질문을 드렸는데, ”우정은 대결이다“라는 답을 주셨다. 우정을 매개로 서로 다른 층위의 두 남성은 조심스럽게 개입하고 용기내서 개입하고 서로의 입장을 나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꺼려하는 뉘앙스를 읽고 그 질문은 더이상 하지 못하셨다고 하는데…아쉽기도 하고 그게 그들사이의 대결에서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호의나 선의보다 책 편집자님과 세명이서 식사를 하며 편집자님이 우진에게 대하는 진심을 받으면서 우진이 놀랐다는 말을 들려주셨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청년은 자신의 존재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산의 어느 독자도 우진님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다.


계엄과 관련해서 20대 남성들이 왜 정치적 참여를 덜할까 라는 질문에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군대라는 위계문화는 합리적인 저항이라는 것을 할수 없게 한다. 군대에서 2년의 경험이 어떤 무력감이나 패배감을 학습하는 시간이 아닐까하는 말에 그럴수 있겠다 생각이들었다. 고참이나 장교가 불합리적이고 말도안되는 걸 우기고 밀어부치는걸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다 경험해 봤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서는 조금은 나을테지만 낮은 지위라는 위치성으로는 군대에서 따르는 것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힘의 질서에 따르게 하고 강해야 한다는 원리를 내면화하게 되는 시간이지 않을까.


남성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 사이에 공통의 언어가 부족하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성들은 저만치 앞으로 가있는데, 남성들은 그자리에서 지지부진하다. 나아가지 못하는 남성들만 탓할게 아니라 그 남성들이 왜 나아가지 못하고 불안과 경쟁을 내면화하고 공정하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 선배 페미니스트로써의 의무라면 이들 10대, 20대, 30대 남성들과 어떤식으로라도 자꾸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봐야 된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어주는 경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들이 좀더 수용되는 경험을 받아봤으면 좋겠다. 경쟁하지 않아도 남자답지 않아도 결혼하지 못해도 돈을 적게 벌어도 인서울 못해도 모쏠이어도 괜찮다고 수용되는 경험을 많이 경험하길 빈다.


29년동안 우울증으로 늘 죽고 싶어하던 중년 남자는 그래서 대학도 졸업못하고 초중고 대학 친구가 없었고 많은 시간을 잠으로 누워서 보낸 루저였어도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각자 생긴대로 살면 되고, 못나면 도움을 받으면 되고 내가 할수 있는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서로 함께 살면 되는 것이다. 이게 10대, 20대, 30대 남성들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인류학공부든, 진보적인 사회활동이든 세상은 잘 안바뀌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공회전하는 느낌이랄까. 작가님의 그 질문에 교수님은 이런 답을 주셨다고 한다. 공회전도 흔적을 남긴다고. 우린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게 아니다. 존재가 이미 뭘하고 있는게 아닐까.


작가님의 북토크가 너무 좋아서 북토크가 끝나고 사인 받으면서 조심스럽게 부산역에서 몇시차로 올라가시냐고 여쭤보았다. 대화를 더 하고 싶은 나의 제안을 혼쾌히 받아주셔서 부산역까지 태워드리고 같이 국밥을 먹고 차한잔을 하며 못다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너무 좋은 북토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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