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시 읽고 15분 글쓰기)

시읽고15분글쓰기

by 박조건형

깃(시 읽고 15분 글쓰기)


마거릿 애트우드 시집 <돌은 위로가 되지> 중에서 105페이지의 ‘깃’ 이라는 시를 읽고


시인이 산책을 읽다가 길에서 새의 깃털 하나를 주웠고 그 연상에서 비롯된 시이지 않을까 싶다. 사냥꾼을 피해, 생존하기 위해서, 올빼미들끼리 다툼을 하는 것은 생존의 치열함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의 흔적을 보고 그 치열함을 상상해 본다. 하늘가까이 날아오르기 위해 올랐다가 부러진 날개. 추락. 누구든 한때 잘 나갈때가 있고 하늘 높이 오를 때가 있다. 모든 삶은 실패라는 말이 나는 와닿는다. 그것은 회의적이고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 삶의 본질은 비극이고 모든 삶은 결국 실패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아무것도 아닌 삶을 헛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한게 아닐까. 원래 본인이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도 잘 받아본 사람이 잘하는 것처럼, 당신의 삶이 의미있다라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진심으로 오래 듣다보면 결국은 스스로도 내 삶이 의미있다고 셀프위로를 해줄수 있는 단계까지 이를수 있다 믿는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는 스스로 자기를 긍정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라고 하지만, 내 안의 그 무수한 결핍과 뒤틀림을 직시하고 마주하지 않은체 하는 긍정은 결국 어느순간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치열한 전투와 사망의 흔적인 깃털을 가지고 뾰족하게 다듬고 쪼개서 잉크에 찍어 기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는 오로지 자기 삶으로만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를 목격하는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그의 삶으로 우리가 받은 것들을 말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는 시선을 가질때(시혜적 시선은 아니다) 누군가도 나의 삶을 응원해주고 구원해줄 것이라 믿는다.


이 시집의 제목 <돌은 위로가 되지>를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는 하찭은 아무 의미도 없을 돌일지라도 누군가에는 그 돌이 위로의 존재가 되기도 한다. 내가 나의 삶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까. 우리 ‘구원’이라는 단어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돌도 할 수 있는 위로이다. 그러니깐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래서 그 사람 옆에 있어주고 싶고 그 옆에서 존재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조차 우리는 구원이 될수 있고 그런 행동하나 기록하나 발화 하나가 위로의 출발이 될수 있음을 우리는 알았으면 싶다. 나조차 하잖게 여기지만 내가 누군가에게는 또한 구원이 될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변화와 구원은 이렇게 작은 돌덩어리 하나하나의 존재와 목소리와 행동으로 시작한다고 믿는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한들 죽음으로 향하는 이 세상의 역동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다. 믿음의 영역이다. 산책하다가 발견한 깃 하나에서 누군가의 치열했던 삶과 전투, 죽음을 생각해 낼수 있는 마음이라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너무 내가 해낼수 있는 일들을 과소 평가하지는 말았으면 싶다. 그리고 내가 해낼수 있는 최소치의 의미는 그냥 살아냄이다. 삶은 치열하고 삶은 비극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단한 일을 행하고 있는게 아닐까. 너무 많은 것, 대단한 것을 생각지는 말았으면 싶다. 물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쓰는 활동가들도 많고 우리는 그들의 덕을 보고 있는 것도 맞다. 에너지를 그런 방식으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쓰면 되고, 거기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은 내 삶에 집중을 하면 되는 것이다. 내 삶에 집중하고 나를 관찰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고 만약에 거기서 더 나아갈수 있다면, 나는 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될것인지 관계는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고민과 실천을 이어 나가면 된다.


우리는 그냥 살아내면 충분하다. 누군들 살아냄이 쉬운 사람이 있을까. 오늘 하루 살아낸 나에게 위로와 칭찬을 주었으면 좋겠다. #시읽고15분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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