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후기
개인적 피난 행렬(이나리혜 산문집)
회피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회피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나도 어떻게 보면 29년의 우울증의 시간은 회피의 시간이었다. 29년 개고생하고 겨우 나이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얻은 평화이다.
감독님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오래 찍을수 있을까 고민하신다. 몇년째 팬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스토킹, 친구들의 죽음, 해로운 사랑에 복합적으로 정신이 나간상태에서 프랑스 몽펠리에로 간다. 4개월간을 목표로 가서 언어공부도 하고 그곳에서 여유로움을 즐긴다. 여유로움은 여행지에서나 누릴수 있는건지도 모른다. 많은 한국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감독님도 한국에서 살이 오르면 다이어트 약을 먹고 살이 오르지 않아도 체중 증가 방지를 목적으로 먹곤했다. 과도한 다이어트와 식욕을 통제해야한다는 스트레스는 결국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게 만든다. 여러번 자살시도의 경험도 있으셨다. 무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전업작가로 사는건 누구에게나 녹녹치 않다. 전업작가로 생계를 책임지며 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도 화물차 일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사람을 만난다.
몽펠리에에서 즉흥적으로 중세도시인 생-길렁-르-데세흐 에 갔다가 마지막 버스를 놓쳐 버리고 인적없는 도시에 고립된다. 인적없는 중세도시에서 동양인 여성은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을 것 같다. 다행히 카페사장님께 도움을 청해 차를 얻어 타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문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이 들었다. 죽고 싶은 생각을 자주 하지만 막상 죽음의 순간에 다다르면 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해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도 우울증이 심할때 자주 아파트 옥상을 올라갔고 베란다 창을 바라봤었다. 죽음이라는게 그리 쉽게 행동으로 옮길수 없는 것이었다. 죽을 용기 없는 나가 그나마 다행이었다. 늘 삶은 불안하고 흔들리고 힘들고 나는 미약하고 어른스럽지 못하고 나약하다 생각했다. 미래가 없었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울증에 너무 지쳐 우울증이 심해질때면 늘 죽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다행히 죽지고 않고 29년을 살아남아 생존했더니 지금은 그래도 살만하다. 아니, 29년 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안정감을 바탕으로 평화롭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기적이 아닌가.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나였는데, 이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재미있고, 나의 50대, 60대, 70대가 궁금해진다.
감독님의 개인적 피난 이야기를 읽으며 충분히 그 나이에 불안하고 흔들릴수 있다 생각했다. 나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으니깐. 알바를 하며 영화를 병행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일단은 살아 남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자기 생계를 책임지는 일부터 집중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직장에 오래 다니는 일은 누구에게나 싶지 않다. 누구나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그게 어렵지 않은 거라 생각할수 있지만, 누군가에는 남들 다 하는게 너무나도 힘든 일일수 있다. 감독님에게는 어떤 일이든 자기에게 맞는 시간과 일의 강도와 일의 성격을 찾아서 일단 오래 일을 해보는게 우선으로 보인다. 심리적인 불안이나 폭식과 구토의 문제는 개인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테고, 명상이나 마음공부도 한 방법이겠다. 마음의 평화는 금방 얻을수 있는 답은 아니다. 오랜시간 동안 화두로 안고 찾아가야한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알려진 박상영 소설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잠자는 시간을 쪼개 새벽시간에 글을 몇년간 써왔다. 다행히 전업작가로 살아도 될만큼 유명해져서 소설만 쓰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런 전업작가는 극히 드물다는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누구든 의지와 열정이 강하다고 될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무명배우로 알바를 병행하며 십몇년을 연기하지만 누군가는 영화나 드라마로 유명해지고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접고 생계에 집중한다. 두 가지 삶 모두 각자에겐 의미있는 선택이다. 꿈을 접는 걸 난 실패라 생각진 않는다.
주 5일 직장일을 하시고, 토일 주말에 영화를 찍으려고 해도 일단 주 5일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할수 있는 몸과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게 지금은 우선으로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자신에게 들어가는 생계비용은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를 계속 찍을 것이냐 말것이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50살 먹은 꼰대가 감독님에게 하는 잔소리가 아니라 그냥 내가 감독님의 나이에 그런 심리적인 불안도 있고 영화도 계속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까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생각해봤다. 오래 살아남아야 영화를 찍을일도 생긴다. 오래 살아남을려면 내 마음과 몸을 돌봐야 한다. 그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