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발코니에서 봐야 하는 공연 (노약자와 임산부에게 추천하지 않음)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시리즈를 넷플릭스에서 보고 있으니까 런던에서 하는 쇼 광고가 자꾸 뜨는 거다. 그래서 광고를 계속 보다가 얼떨결에 표를 예매해 버렸다.
티켓팅을 한 것은 작년이었는데, 오늘 아침 막상 보러 런던까지 가려고 하니까 좀 귀찮았다. 근데 어찌어찌 극장 Phoenix Theatre까지 가니 좋았다. 매일 비가 찌질찌질 오고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파란 하늘도 봤다.
극장 안에 들어가니 장식이 화려한 고풍적 인테리어 (이탈리아식 스타일과 르네상스적 장식이라 함)와 같이 있는 대형 신문 기사 프린트가 눈에 띄었다.
복도를 걸으면서 어, 여기 언제 왔었던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받아서 이전 공연들을 찾아봤는데 본 게 없는 것으로 보아 처음 간 거였다. 아마도 런던의 극장들이 내부 인테리어가 좀 다들 비슷비슷한 그런 게 있는갑다.
공연장 안에 들어가서는 무대가 너무 높이 있어서 좀 놀랐다.
무대 뒤 관객석을 보니 빈자리 없이 관객들이 꽉 찬 것처럼 보였다.
공연은 전반부를 보다가 '어, 이게 시즌 1 내용이었나? 내가 너무 오래전에 봐서 내용을 까먹어서 이렇게 신선한가?' 싶었는데 전반부를 어느 정도 보다가 깨달았다. 아, 이건 외전이구나.
외전인걸 알고 갔으면 그냥 마음 편하게 봤을 것 같은데 넷플릭스 시리즈의 쇼 버전이라 생각하고 가서 도입부에서 좀 당황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혹시 보러 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미리 알고 가시길. 이것은 헨리/베크나의 어릴 적 이야기 + 어린 일레븐과 시설에서 만날 때까지의 외전이라는 것.
전반부 끝나고 바에 갔더니 데모고르곤 인형 장식이 있는 게 귀여웠다. 파는 굿즈면 사볼까 싶었은데 파는 거 같지는 않았다.
바 여기저기에 공연 컨셉으로 포스터 액자들이 있는 것도 아주 센스가 넘쳤다.
후반부는 좀 더 시리스물에서 봤던 내용들이 많이 겹쳤다. 그래도 뻔한 느낌은 아니고 여전히 흥미진진했다. 배우들이 다들 연기도 잘하는데 주인공 헨리/베크나가 킹왕짱이다. 약간 빅뱅이론의 쉘든 같은 느낌으로 시작하는데 뒤로 갈수록 넷플릭스 시리즈에 나오는 딱 그 헨리같이 된다.
전반적으로는 내용이 재밌기도 하지만 무대와 연출을 진짜 잘 한 느낌이다. 무대와 연출이 너무 훌륭해서 몰입도가 장난 아니다. 아, 역시 이런 게 큰 공연의 매력이지 싶었다. 무대와 연출의 퀄리티에서 여기에 돈이 얼마나 들어갔을지가 대충 느껴졌다. 동네 극장 공연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스케일감과 돈냄새가 났다. 시청각적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들도 많아서 노약자나 임산부는 보러 가면 안 될 것 같다.
1층 stalls 제일 앞줄에서 봤는데 보통 무대에서 제일 가까우니까 나쁘지 않아야 하는데 여기는 무대가 높아서 1층이 별로였다. 배우들이 무대 앞에 서야 좀 잘 보이고 무대 뒤쪽으로 가면 다리가 다 안 보이거나 상체만 보이기도 하고 누워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였다. 그나마 무대가 빙글빙글 돌아가서 관객이 어디에 앉아 있든 잘 보이게 하려고 한 배려가 느껴지기는 했다.
그리고 배우들이 연기의 일환으로 자꾸 뭘 관객들에게 던진다거나 침이 튄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잦아서 제일 앞자리 가운데 앉은 사람들은 좀 불편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제일 앞줄 앞에 난 좁은 공간에서 자꾸 뛰어다녀서 다리를 앞으로 뻗고 있다가 내 다리에 걸려 넘어질까 싶어 급히 다리를 접어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혹시 이거 보러 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1층 stalls 자리 말고 2층 발코니 dress circle 자리로 예매하시는 걸 추천드린다. 물론 2층에 올라가면 거리가 있으니까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보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누가 뭘 하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다 볼 수 있어서 그게 더 나을 것 같다.